문화·스포츠 문화

[책] 중세 귀족들이 즐겨 먹던 빵은?

■ 빵의 지구사 (윌리엄 루벨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

16세기 상류층 하얀색 빵 선호… 갈색빵은 가난한 소작농 주식

현대엔 정반대 현상 나타나

시대·나라별 맛 기준 변화 등 인류 함께한 빵의 역사 한조각


중세시대 유럽에서 눈처럼 새하얀 빵은 부자들의 전유물인 반면 갈색의 호밀빵은 빈자들을 상징했다. 그래서인지, 뤼뱅 보쟁의 1630년작 ''체스판이 있는 정물''에 그려진 흰 빵은 만돌린과 고급 지갑 등 귀족들의 사치품 사이에서도 전혀 어색함이 없다. 만약 이 곳에 흰 빵 대신 크고 단단한 호밀빵이 그려졌다면 어색하기 그지 없었을 것이다. /사진제공=휴머니스트

중세시대 유럽에서 눈처럼 새하얀 빵은 부자들의 전유물인 반면 갈색의 호밀빵은 빈자들을 상징했다. 그래서인지, 뤼뱅 보쟁의 1630년작 ''체스판이 있는 정물''에 그려진 흰 빵은 만돌린과 고급 지갑 등 귀족들의 사치품 사이에서도 전혀 어색함이 없다. 만약 이 곳에 흰 빵 대신 크고 단단한 호밀빵이 그려졌다면 어색하기 그지 없었을 것이다. /사진제공=휴머니스트


여기 빵이 그려진 두 개의 그림이 있다. 우선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뤼뱅 보쟁의 '체스판이 있는 정물(왼쪽 그림)'을 보자. 서양 탄현악기인 만돌린과 악보, 화려하게 세공된 지갑 등 당대 귀족들의 사치품과 함께 테이블을 장식하고 있는 것은 눈처럼 새하얀 빵이다. 최고급 흰 밀가루를 사용한 빵은 부드럽고 둥글게 부풀어 있는데, 아마 속살도 가볍고 폭신폭신할 것이다. 빵의 색은 껍질마저도 밝다. 16,17세기 유럽의 상류층은 밝은색 껍질을 선호했기에 당시 제빵사들은 고급 빵을 만들 때 마치 덜 구워진 것 마냥 하얗게 구워냈다고 한다.

반면 루이 르냉의 1964년작 '행복한 가정(오른쪽)'에 그려진 것은 커다란 갈색 빵이다. 이 단단한 호밀빵 또는 통곡물빵은 당시 가난한 소작농들의 주식이었다.


비단 이 두 그림뿐 아니라 16~18세기의 다른 그림에서도 흰 빵은 부의 상징으로, 갈색 빵은 가난의 상징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이유는 간단했는데 흰 빵이 더 비쌌기 때문이다. 흰 밀가루는 생산과정에서 양이 줄어드는 특성상 충분한 양이 공급되기 어려웠다. 이런 현상은 19세기 제분이 산업화하기 전까지 줄곧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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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빵이 상징하는 이런 '사회적 지위'가 영원불변한 것은 아니다. 저자는 만약 오늘날 영국 또는 미국의 부유한 식탁을 묘사하고자 한다면 오히려 껍질이 도톰한 수제 팽 드 캉파뉴(통밀 또는 호밀가루로 만드는 프랑스 전통 시골빵)이 더 어울릴 것이라고 한다. 그에 반해 빈자의 식탁을 채우는 것은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눈처럼 하얀' 식빵일 것이다. 결국 예나 지금이나 가난한 자는 더 저렴한 빵을 먹는다고 할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 현상을 꼭 비틀린 시각으로 볼 것만은 아니라고 덧붙인다. 저자는 빵의 역사를 이끌어온 주요 동력 중 하나가 바로 '가난한 자의 빵을 먹지 않겠다'는 사람들의 의지였다고 했다. 즉, 눈처럼 새하얀 빵을 더 쉽게 구할 수 있게 된 이런 현상은 왕이 먹는 밀빵을 먹고 싶어 하는 모두의 꿈이 천 년의 시간을 지나 마침내 이루어졌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책은 '빵의 지구사'라는 제목에서 짐작하듯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음식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빵에 대해서 줄곧 얘기한다. 범위는 무척이나 넓다. 무려 2만2,500년전, 세계 최초의 도시 문명인 우르크(Uruk) 문명에도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로 오래된 빵의 기원을 밝히는 것은 물론 고대인들이 어떤 빵을 먹었는지, 좋고 맛있는 빵의 기준은 무엇이고 그 기준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지금 현재 세계인들은 어떤 빵을, 어떤 이유로 먹는지 등을 살펴본다. 심지어 독자들이 실제로 빵을 만들어볼 수 있도록 레시피인 '다양한 빵 요리법'까지 수록했다. 말 그대로 빵을 먹길 좋아하는 사람에서부터 빵을 만드는 사람에 이르는, 모든 '빵 마니아'를 위한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더불어 번역본에만 수록된 '한국 빵의 역사'도 흥미로운 글이다. 음식 인문학자인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가 쓴 30여쪽의 글은 19세기 말 일본에서 전해진 한반도 빵의 역사와 더불어 해방 이후 대량 생산된 공장제 빵이 어떻게 시대와 조응하며 한국 사회에 확산되어 왔는지를 들려준다. 1만5,000원

정답 : ③


김경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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