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우리나라도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면서 국민들은 자연스럽게 건강과 관련된 환경에 점차 눈을 뜨기 시작했다. 특히 사람들은 먹거리와 관련된 「마시는 물」에 관해 큰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대다수 국민들은 오염된 하천을 보고 여전히 수돗물 먹기를 기피하고 있다. 설령 수돗물을 먹는 사람도 반드시 끓여서 마시지 그냥 생수자체로 마시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사정이 이렇게 됐지만 지난 94년3월 대법원 판결이 나기전까지 내국인들은 합법적인 방법으로 생수를 사마실 수 없었다. 설령 당시 생수업체에서 산 생수를 마셨다면 이는 불법적으로 유통된 생수를 마신 꼴이 됐다. 정부가 생수판매를 외국인에 국한시켜 판매할 수 있도록 법제화했기 때문이다. 「먹는 생수」를 놓고도 우리나라 국민들은 외국인들과 차별을 받은 셈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정부가 생수를 외국인에 국한시켜 판매토록 한 법제도는 형평성을 잃은 것이라며 판결로 용납하지 않았다. 사건의 발단은 이러했다.
㈜고려종합, 풀무원샘물㈜, 한국청정음료㈜, 다이아몬드정수㈜, 산정정수㈜, ㈜서림, 산수음료㈜ 등이 지난 76~87년 사이에 생산품 전량을 수출하거나 주한외국인에 대한 판매에 한정하는 조건으로 보건사회부(현 보건복지부)로부터 허가를 받았다. 이들 생수제조업체들은 지난 90년7월께 허가조건들을 위반, 내국인들에게 판매하다 적발돼 과징금을 부과받자 내국인에게도 생수시판을 할 수 있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1심인 서울고법은 보사부의 과징금 부과가 적법하다며 생수업체에 패소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업체들은 즉각 대법원에 상고했다.
대법원 선고를 앞두고 당시 사회분위기는 수돗물 불신이 극에 달해 있었다. 하지만 대법원이 내국인들에게 생수 시판을 허용할 경우 정부의 수도물 정책을 포기하는 꼴이라며 행정부처와 일부 시민단체들은 반대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대법원 제2부는 94년3월8일 풀무원샘물(주)등 8곳의 생수제조업체가 보건사회부장관을 상대로 낸 과징금부과처분취소 청구소송 상고심에서『생수를 외국인들에게만 판매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있는 보사부장관 고시는 국민들의 행복추구권을 제한하기 때문에 「무효」』라며 원고 패소판결을 내린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 보냈다. 결국 생수업체에 승소를 안겨 주었다.
이 사건은 안용득(安龍得)·안우만(安又萬)·김용준(金容俊)·천경송(千慶松)대법관이 관여했다. 주심은 현재 헌법재판소장인 金대법관이 맡았다. 생수제조업체를 대리해 법무법인 태평양 소속 김인섭(金仁燮)·황의인(黃義仁)·이후동(李厚東)변호사가 맡았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수출용 또는 주한외국인에 한해 생수판매를 허용하고 있는「보사부장관고시 84-38호」는 깨끗한 물을 자신의 선택에 따라 마실 수 있는 헌법상 국민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한 것이므로 무효』라고 밝혔다.
이번 판결은 맑고 깨끗한 물을 자신의 선택에 따라 마실 권리 및 내국인이라고해 외국인에 비해 불평등한 대우를 받지 않을 권리를 인정해 준 것이다.결국 대법원은 이 판결을 통해 내국인에게도 생수시판을 허용해준 계기를 마련했다.
대법원의 이같은 판결은 특히 생수제조업체들에게 가뭄속에 단비가 됐다. 생수업체들이 국내인들에 대한 생수판로가 보장되자 앞다퉈 공장을 설립했다.
윤종열기자/YJYUN@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