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초일류로 올라서려면 연구개발(R&D) 능력이 초일류여야 가능하다.’ 삼성그룹이 천문학적 규모인 47조원의 R&D 투자계획을 마련한 것은 새로운 성장잠재력을 구축해야 한다는 인식 때문이다. 특히 일류기업이 아닌 초일류를 지향하는 삼성으로서는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는 성장에 한계가 있는 ‘성장 임계치’에 도달했다고 판단한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윤우 삼성전자 기술총괄 부회장은 “초일류 기업이라는 삼성의 분명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R&D에 그룹의 역량을 집중해야 할 것”이라며 삼성의 10년 뒤가 R&D에 달려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이는 이건희 회장이 그룹 비전으로 제시한 ‘초일류 기업’을 향한 실천전략이다. 경쟁기업을 압도하는 기술우위를 구축할 때 초일류 삼성의 꿈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초일류 도약을 위한 ‘피할 수 없는 도전’=삼성그룹의 R&D 투자 결정은 글로벌 기업 경쟁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다. 지난 60~70년대서는 조립 생산효율에 초점을 맞추고 80~90년대에는 신제품 개발, 품질개선에 주력했다면 21세기에는 기술혁신 역량과 원천기술 확보가 기업경쟁력의 관건이라는 문제의식이 대규모 R&D 투자의 배경으로 풀이된다. 특히 전자ㆍ기계ㆍ화학 분야에 차세대 성장엔진을 구체적으로 공개한 것은 삼성그룹의 최대 고민인 ‘10년 뒤 뭘 먹고 살 것인지’에 대한 답을 찾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삼성그룹의 한 관계자는 “과거 국내기업은 해외 초일류 기업들의 원천기술을 따라 하거나 부스러기로 제품을 개발했고 삼성도 이에 자유롭지 못했지만 21세기 삼성은 원천기술을 확보해 시장을 창출해나가는 기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R&D 투자계획에서 삼성은 “오는 2010년 매출액을 올해 예상치(139조5,000억원)의 두배인 270조원으로, 세전이익은 14조6,000억원에서 30조원으로 늘릴 계획”이라고 제시했다. 또 브랜드 가치는 700억달러로 세계 정상권에 올라서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는 ‘기술독립’의 단계를 넘어서 ‘기술 종주국’의 수준으로 올라서야 현실화 가능한 목표로 읽혀진다. ◇핵심기술 확보에 올인한다=삼성그룹의 R&D 투자는 핵심기술 개발을 통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것에 역점을 두고 있다. 기존 세계 1위인 기술에 대해서는 부동의 1위를 지키기 위해, 육성전략으로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시장에 대해서는 시장이 형성되기 전에 원천기술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또 계열사별 시너지 효과도 강화할 계획이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계열사별 독립적인 기술에 대해서는 기존의 방식과 같이 투자를 하고 새로운 기술은 계열사간 공동개발 등을 통해 원천기술을 확보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이번 R&D 투자계획에서도 삼성그룹은 주력인 전자뿐만 아니라 기계ㆍ화학 등에서도 차세대 성장엔진을 선정, 집중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삼성그룹이 선정한 13가지 차세대 성장엔진 중 고용량 메모리와 디스플레이, 이동통신, 디지털 TV 등 이미 세계 선두권에 진입한 사업에 대해서는 2010년까지 현재의 위치를 더욱 확고히 다져나갈 방침이다. 새로운 사업으로 내놓은 에너지와 광원은 2010년 이후 성장 모멘텀을 제공할 유망사업으로 보고 있다. 이밖에 조선 분야에서는 컨테이너선이나 크루즈선 등 고부가가치사업으로 영역을 다각화하고 정밀기기에서는 디지털카메라용 LCD 등 핵심기술과 세계 수준의 초정밀 렌즈, 화상처리 기술 등을 확보할 방침이다. 화학은 정보전자 소재 개발에 전자 계열사들과 공조체제를 유지하며 반도체용 나노소재와 LCD, PDP, OLED 등 차세대 디스플레이용 소재, 연료전지 소재 등 첨단재료 분야의 제품경쟁력 강화와 부품 국산화에 주력할 계획이다 ◇‘반삼성 기류’ 타개하는 또 다른 해법=삼성의 이번 R&D 투자계획은 그동안 삼성을 옥죄어오던 사회ㆍ정치적 공방을 해소한다는 다중적인 포석도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삼성은 이번 투자계획에서 협력업체와의 동반성장에 대해 상당한 악센트를 부여했다. ‘혼자 잘 나가는 삼성’이란 이미지에서 벗어나 ‘이웃을 돌아보는 삼성’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다. 물론 이러한 동반성장은 삼성의 경쟁력을 위해서는 협력업체와 기초기술 개발이 중요하다는 ‘경제논리’가 우선되고 있지만 삼성의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대한 화답의 하나로 보인다. 재계에서는 ‘X파일 사건’이나 지배구조를 둘러싼 논란 등으로 시달려온 삼성이 외풍에 흔들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대외적으로 표명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최근 삼성전자의 애널리스트 데이, 각종 신제품 발표 등에 이은 대규모 R&D 투자 발표는 삼성 흔들기를 공격경영으로 정면 돌파하겠다는 삼성의 의지가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재계 일각에서는 이와 관련, 이번 투자계획을 통해 ‘삼성=성장의 덫에 걸린 한국경제의 난관을 헤쳐나가는 돌격대’라는 자격을 다시 한번 인정받게 된다면 최근 사회가 요구하고 있는 ‘삼성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답변으로서도 충분히 기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