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수필] 재벌 총수들의 오찬

李建榮(전 건설부차관)얼마전 청와대에서 대통령과 재벌총수들의 오찬이 있었다. 텔레비전에 비친 총수들의 모습이 잔뜻 긴장되어 있었다. 뇌수술을 막 끝낸 김우중(金宇中) 회장은 더욱 초췌해 보였다. 이 자리에서 소위 재벌 빅딜이 약속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만약 백악관이었다면 대통령이 총수들에게서 경영에 대해 한 수 배우는 자리였을 것이다. 그리고 나서 며칠 후에 반도체 빅딜의 윤곽이 발표되었다. 미리 써 놓은 시나리오가 있었던 것인지 답은 예상대로였다. 어느 편을 든다기 보다 반도체에 남다른 애착을 보이다가 물러나게 된 LG에 나는 깊은 연민을 느낀다. 기업정신은 이같은 애착에서 출발하는 것이리라. 망년회를 겸한 술좌석마다 재벌 빅딜 이야기가 끝이 없다. 정부가 중매를 서고 주례를 맡을 수는 있다. 그러나 강제결혼의 뒤끝은 항상 좋지 않은 법이다. 기업이란 생명체처럼 오묘한 것이라 좀더 시간을 갖고 서로간의 믿음과 자율을 바탕으로 추진되어야 하지 않을까? 재벌이란 말은 영어로 CHAEBUL이라 쓴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특유의 공룡기업군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빚잔치가 오늘의 IMF원인이기도 하다. 우리의 재벌이 나라경제를 좌지우지할만큼 공룡화되었다고 하지만, 외국의 다국적기업 하나 규모밖에 안된다. 뿐만 아니라 손오공 부처님 손바닥에서 놀듯, 재벌 역시 뛰어봐야 권력의 손바닥 위다. 그래서 정권이 바뀔 적마다 재벌총수들이 눈치를 보며 이리저리 불려 다닌다. 미운털 박히면 그 고통이 얼마나 큰 지 잘안다.오죽하면 어느 총수가 직접 대권까지 잡아보겠다고 나서고, 어느 총수는 법정에서 눈물까지 흘렸겠는가? 정치란 돌고 도는 것이니까. 아마도 다음선거 때는 더더욱 여기저기 넉넉하게 보험을 들어야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미국의 기업들은 본사를 디트로이트에, 샌프란시스코에, 아틀란타에 두고 워싱턴에 갈 일이 없다. 푸랑크푸르트에 있는 기업들이나 밀라노에 있는 기업들은 본이나 로마에서 벌어지는 정치싸움보다 국제시장의 흐름에 더 관심이 많다. 그런데 우리 기업들은 서울 한복판에 본사를 두고 세종로로, 과천으로, 여의도로 주파수를 맞추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산다고 믿고 있다. 이렇게 커 왔으니 우리의 기업이 세계시장에 나가 경쟁력이 있겠는가? 이제 기업들을 풀어주자. 정치의 사슬에서 풀어주자. 총수들은 청와대의 오찬이 너무 비싸다고 생각할 것이다. <대/입/합/격/자/발/표 700-2300,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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