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심층진단/기고] 외국인 주도장세와 기관투자가 역할

지난해 일본인 친구가 일본의 주식시장은 이머징 마켓이라고 한탄하는 말을 들은 일이 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어느 나라의 주가 형성의 주도권이 국내투자가가 아닌 외국투자가의 손에 달려 있으면 그 시장은 이머징 마켓이라고 해야 하는데 일본이 바로 그런 시장이라는 것이었다.당시 일본시장의 외국인 주식보유 비율은 15% 정도였다. 그런데도 개인투자자는 자기네 주식시장을 외면하고 있고 기관투자가는 구조조정에 정신이 없었다. 사업법인 또한 주식의 상호보유 해소에 대한 압력과 시가회계 도입에 대한 대응차원에서 보유주식을 내다 팔기만 하던 때라 유일한 매수 세력은 외국인뿐이었다. 자연히 거래량의 절반은 외국인이 차지하고 외국인이 사면 오르고 팔면 떨어지는, 그 친구의 표현 그대로 이머징 마켓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최근의 우리 주식시장이야말로 전형적인 이머징 마켓의 성격을 띠고 있지 않나 여겨진다. 외국인의 주식보유비율(시가기준)은 평균 37%를 넘어섰고 주요 종목의 경우에는 50~60%에 이르고 있다. 그야말로 외국인이 좌지우지하는 시장이 된 것이다. 뿐만 아니다. 지난 번 미국신용평가기관 S&P가 우리나라 국가신용등급을 올린 일이라든지 모건스탠리 지수의 우리 주식시장 편입비율 결정, 외국투자가에 의한 우리나라 부실기업인수결정 등 우리 주식시장에 엄청난 영향을 주는 사안들이 우리가 알기도 전에 외국인들에 의해서 결정되고 있다. 반면에 안전판 역할을 해야 할 국내 기관투자가의 기능은 극도로 취약해 있다. IMF위기이전까지만 해도 22%를 넘던 기관투자가의 비중이 현재는 11%까지 낮아져 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시장에서 국내투자가는 외국인의 눈치를 보면서 주가를 점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이머징 마켓의 한계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국내 기관투자가는 최근의 상황에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까. 가장 중요한 것은 앞으로 주식투자를 늘리지 않으면 안되는 국면이 오고 있다는 점을 확실하게 인식해야 한다는 점이다. 특별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한 국내 금리가 다시 두자리 수로 돌아간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기 때문에 각종 연기금을 비롯해 보험, 투신 모두 고정금리 상품이외의 투자대상을 찾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외국인의 투자방식을 제대로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 외국인투자가 중에는 단기 매매차익을 노리고 트레이딩적인 매매를 하고 있는 투자가도 없진 않지만 대부분은 철저하게 종목중심으로 장기투자를 하고 있다. 주식투자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개별종목의 위험과 시장위험을 피해야 한다는 사실을 오랜 경험을 통해 체득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확실하게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개별종목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자주 기업을 방문해 그 기업이 전세계 같은 업종의 기업보다 경쟁력이 있는가, 주가는 저평가되어 있는가 등의 여부를 철저히 분석한다. 이밖에 시장위험을 고려해 장기투자를 임해야 한다. 시장위험은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급격한 시황변동이 있을 때는 그 상황이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그러기 위해서는 장기투자를 해야 하는 것이다. 어찌 보면 간단한 일인데 국내기관투자가의 경우는 왜 못하는 것일까. 우선 경험 있는 운용전문가가 부족하다. 지금까지는 그때 그때 장세에 따라 트레이딩을 잘하는 게 운용전문가의 할 일이라고 여겨져 왔기 때문이다. 투자기간이 길어야 1년, 심지어는 서너 달 정도의 짧은 기간인데 언제 효과가 날지 모르는 기업분석보다는 그때 그때의 단기적인 시황변동을 따라 가는 편이 훨씬 성공할 확률이 높다고 생각해 온 것이다. 따라서 운용전문가가 장기로 평가 받는 시스템이 확립되지 않고서는 운용 노하우의 축적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운용업무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전문성을 인정하는 풍토의 조성 또한 시급한 과제다. 세계에서 자산운용업으로 성공한 사례를 보면 오너회사이거나 파트너십 또는 도제식으로 운영되는 회사가 대부분이다. 재벌이나 금융기관이 급조해 자회사로 세운 운용회사가 성공하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제조업과는 달리 운용철학, 운용의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노하우를 축적해 나간다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기관투자가와 그곳에서 일하는 펀드매니저가 제 역할을 못한다고 비난하기 이전에 어떻게 환경이 조성돼야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지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않으면 안될 시점이다. /강창희 굿모닝투자신탁운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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