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연구개발에 혼을 싣자/조성락 기술경영경제학회 회장(시론)

국내기업 부설연구소가 3천개를 넘었다. 2천개를 넘어선지 불과 2년여만의 일이다. 이런 연구소 설립 붐은 기업들이 좋은 제품을 개발해 승부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음을 반영하는 것으로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그러나 현재 위기에 처한 우리나라의 경제현실에서 기업 부설연구소가 제기능을 다하기 위해서는 풀어야 할 문제가 적지 않다. 도전에 어떻게 응전하느냐에 따라 우리기업들은 위기를 기회로 전환할 수도 있고 영원히 나락으로 추락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 기업연구소들이 맞고 있는 도전은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연구소를 하나의 비용센터(Cost Center)로 간주하는 기업 내부의 인식이다. 연구개발이야말로 경쟁력의 핵심요소로 기업에 이익을 가져다 주는 이익센터(Profit Center)라는 인식이 확산될 수 있도록 연구개발활동을 효율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기업 연구개발 조직의 기본 임무는 혁신의 정보를 대폭 향상시키고 개발시간을 단축하며 생산에 들어가는 비용을 절감하는 동시에 제품 초기 단계의 결함을 서둘러 바로 잡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이런 임무에 발목을 잡아 연구소를 비용센터로 만드는 장애요인은 무엇인가. 의사결정을 지연시키는 조직의 수직 구조, 중앙통제식 프로젝트 관리, 원활하지 못한 사내 인터페이스, 지식의 분산과 미통합,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간의 시너지 부족, 정보의 미공유, 비용을 증대시키고 제품 출하기간을 지연시키는 개발기간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면 이런 장애를 극복함으로써 연구소를 이익센터로 바꿀 수 있는 해결책은 무엇인가. 첫째, 기술적 핵심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우리 기업들이 맞고 있는 오늘의 어려움은 역량의 분산에서 초래된 바 이런 잘못을 되풀이해서는 안된다. 미국의 제너럴일렉트릭은 세계시장에서 1, 2위 안에 드는 사업만을 선택해 집중함으로써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둘째, 각 부문간 장벽을 허물어 서로 협력하는 동시에 소비자, 부품 공급업자, 연구소, 생산부서, 마케팅 등 모든 부문을 결합시켜 개발활동을 벌이는 소위 「제3세대 연구개발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마이크로소프트, 벤츠 등 성공적인 기업들은 모두 이런 체제를 통해 시너지를 극대화시켰으며 개발기간을 줄이고 소비자의 요구에 보다 적절하게 부응하고 있다. 이런 체제가 제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회사내 모든 부문 구성원들의 마인드가 변화하지 않으면 안된다. 부서간 장벽을 제거한다는 것은 경우에 따라서는 몇 년이 걸릴 수도 있는 매우 어려운 작업이다. 따라서 조직 구성원 모두가 자기가 일하고 있는 부서, 즉 소아적 관점을 버리고 전체 조직이라는 시각에서 일에 접근하겠다는 의식의 전환이 필요한 것이다. 연구소가 외로운 섬으로 남아 있을 여유가 더 이상 없는 것이며 연구개발부서도 이러한 전략에 적극 부응해야 한다. 셋째, 세계적인 연구개발체제를 구축, 강화해야 한다. 글로벌화는 이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독일 지멘스의 총 연구개발 인력중 약 3분의1이 외국에서 활동하고 있다. 지구촌을 망라하는 무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소비자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기술지원을 펼쳐야 하고 세계 최고의 정보와 인력이 모여 있는 곳에서 연구개발활동을 전개해야 하는 것이다. 넷째, 연구개발활동에 정보기술을 적극 활용해 얻을 수 있는 이점을 극대화해야 한다. 물론 정보화 투자의 크기만큼 그 효율적인 활용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국내의 대기업이 거액을 들여 산 슈퍼컴퓨터가 과연 얼마나 효율적으로 활용되고 있는지도 문제다. 고려시대 몽고의 침략이라는 위기속에서 간행된 팔만대장경의 총 5천만자는 1236년부터 16년간 약 1천명의 각수들이 새겼음에도 불구하고 오자와 탈자가 전혀 없고 구양순체로 완벽히 통일돼 있는 것은 곰곰이 되새겨 볼 대목이다. 왜 이것이 가능했을까. 1천명의 각수들이 글자 한 자를 파고는 부처님께 세 번 절하는 일자삼배의 정신으로 일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같이 지극한 정신과 혼을 담은 노력이 위기에 처한 오늘 우리 기업 연구소들이 가져야 할 정신자세가 아닐까.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최선책은 기술력을 강화해 국제경쟁력을 높이는 일이라 하겠다. 이러한 지상 과제 해결의 선봉에 서 있는 연구원들의 혼을 담은 노력과 이러한 노력을 독려하고 격려하는 기업가, 그리고 이 노력이 빛을 발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때다. □약력 ▲충남 당진 출생 ▲고려대 경제학과 ▲한양대 경제학 박사 ▲주독·주영 참사관 ▲경제기획원 투자심사국장 ▲선경그룹 경영기획실 부사장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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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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