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21(월) 18:14李宗奐(사회문화부 차장)
내달 7일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일본방문을 앞두고 일왕(日王)의 호칭문제가 논란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외교통상부가 金대통령의 방일기간중 일왕을 천황(天皇)으로 부를 것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외교에서 상대국가의 문화와 관례를 존중하는 것은 상식중의 상식이다. 하지만 알다시피 이 단순한 사안뒤에 숨어있는 역사적 의미는 그처럼 간단하지 않다. 그래서 「당연」해야 할 일이 「새삼스러운」 것이다.
한일 양국간에 과거사가 이슈가 될 때마다 떠오르는 사진과 말이 있다. 지난 70년 바르샤바의 유태인 위령탑앞에서 무릎을 꿇고 참회의 눈물을 흘리는 브란트 서독총리의 모습, 그리고 85년 바이츠체커 서독대통령이 패전 40주년을 맞아 행한 연설이 그것이다. 『눈을 뜨고, 귀를 열고 있었던 사람이라면 유태인을 끌고가는 열차를 모를리 없었다. 히틀러가 저지른 범죄의 방관자였음을 부끄러워하고, 그 시대를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최근 열린 한일관계 세미나에서 일본의 한 언론 서울특파원이 이런 말을 한 것으로 보도됐다. 『한국은 한손으로는 일본에 도움을 요청하면서 다른 손으로는 뺨을 때린다. 그래서 일본인들 사이에는 혐한(嫌韓)감정이 퍼지고 있다』. 한국측 정치학자의 반론에 비춰보건대「한국은 왜 그토록 과거문제에 매달리는가. 이제는 보다 미래지향적인 관계설정에 주력해야 할 때가 아닌가」라는 뜻을 담고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 그는 일본언론계에서 대표적인 지한파(知韓派)로 꼽히는 인물이다. 때문에 단지 사실을 전달하는 기자로서의 책무에 충실했다고 믿고 싶다.
그러면 일본의 보통사람들은 정말 그렇게 생각할까. 먼저 「일본의 뺨을 때린다」는 표현을 곱씹어 보자.「얻어맞는 일본으로서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뉘앙스가 짙게 깔려있다. 억울하다는 감정도 그에 못지 않다. 한국에서는 초등학교 고학년이면 다 아는 명성황후 시해사건이 일본에서는 최고학부를 나온 이들에게 조차 「금시초문」인 상황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21세기가 눈앞이다. 언제까지 한일 양국이 과거사에 발목이 붙잡혀 있을 수는 없다.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뒤엉켜 있는 매듭을 풀어야 한다. 그 매듭은 일본이 입에 발린 수사(修辭)가 아닌 진심으로 용서를 구할 때 비로소 풀릴 수 있다. 한국인들은 일본의 그같은 자세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띄워보내야 할 「과거」를 붙들고 있는 현재가 한국인에게도 결코 흔쾌한 일은 아니므로 더욱 그렇다.
하지만 조급해 하지는 않는다. 적어도 일본의 보통사람들에게 그들의 낭인무사들이 이웃나라의 황후를 왜, 그토록 처참하게 살해했는가 정도는 상식이 될때 비로소 「당연한」일이 「새삼스럽지」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金대통령의 이번 방일이 「작지만 큰 걸음」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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