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월가 포커스] 北송금과 통일비용

국제 신용평가회사인 무디스의 토머스 번 부사장이 지난달 한국을 방문하고 돌아와서 “한국에 민족주의 성향이 휩쓸고 있다”고 며칠 전 코리아 소사이어티 모임에서 말했다. 그는 최근 한반도에서 제기되고 있는 핵 이슈, 반미 감정에도 불구하고 한국 경제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전제하면서 한국 경제가 처하고 있는 가장 큰 문제로 북한 포용의 비용, 즉 통일 비용을 들었다. 그의 주장을 요약하면 이렇다. “북한 경제의 갑작스런 붕괴가 한국 경제에 큰 부담이 될 것이다. 한국의 통일비용은 한국 경제력(GDP)의 25%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포용정책(햇볕정책)만이 북한의 붕괴를 막고 통일비용을 최소화하고 있다” 그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정부의 2억 달러 대북 송금을 포함, 지난 98년 이래 한국ㆍ중국 등이 50억 달러를 북한에 지원한 것으로 추산하며, 이 정도의 금액은 아주 저렴한 비용이라고 평가했다. 한국에서는 2주 후면 물러가는 김대중 정부의 대북 비밀 송금을 둘러싸고 치열한 정치 싸움이 벌어지고 있지만, 뉴욕 월가에서는 북한 경제가 붕괴될 경우 한국 정부가 부담을 어떻게 최소화할 것인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또 다른 신용평가회사인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는 지난해 7월 한국의 신용등급을 조정하면서 해외발행 채권에 영향을 주는 외국환 신용등급만 올리고, 국내 발행 채권 가격을 결정하는 내국환 신용등급을 올리지 않았다. 북한 경제가 무너질 때 한국이 치러야 할 엄청난 비용을 감안했다는 것이 존 체임버스 이사의 설명이다. 리먼브러더스의 로빈 워스덴 부사장(신용조사담당)도 한국 경제의 당면한 문제는 은행 위기가 아니라 통일 위기라고 주장한다. 그는 5년전 한국 정부가 외환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수십조원의 공적자금을 조성, 은행을 살렸던 것처럼 이제부터 재정 자금에서 통일 비용을 마련할 것을 권했다. 지금 정쟁의 이슈가 되고 있는 2,000억원은 앞으로 감당해야 할 통일 비용에 비해 적은 돈에 불과하다. 정치권에서는 돈을 비밀리에 건넨 대목을 물고 늘어지지만 그렇다면 차제에 북한 붕괴 또는 포용시 필요한 거액의 자금을 어떻게 조성할 것인지를 공개적으로 논의하는 계기로 삼을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고는 갑작스런 북한 붕괴를 우려하는 국제자본시장의 우려를 불식시키지 못해 국가 신인도를 추락시킬 가능성이 크다. <뉴욕=김인영특파원 inkim@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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