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12월27일] 로열더치, 셸 합병


1901년 12월27일, 영국계 석유회사 셸의 창립자 마커스 새뮤얼이 네덜란드계 로열더치와의 합의문서에 서명했다. 가장 놀란 곳은 미국의 스탠더드오일. 불과 며칠 전까지 새뮤얼이 매각을 위한 가격 흥정차 뉴욕에 머물렀기에 인수는 시간 문제라고 여기다 뒤통수를 맞았다. 회사를 넘기면 요즘 돈으로 10억달러 상당을 주겠다는 스탠더드오일의 제의에 가족들까지 매각을 종용했던 상황을 새뮤얼은 왜 뒤집었을까. 유대계였지만 영국인으로서 석유업이 미국에 종속되는 게 꺼림칙했던 터에 공동판매를 추진하던 네덜란드의 로열더치가 새로운 제안을 해왔기 때문이다. 로열더치와의 밀고 당기는 협상을 통해 이듬해 6월 출범한 게 지주회사 ‘아시아틱 석유회사’. 실질적인 통합은 그로부터 5년 뒤인 1907년에야 이뤄졌다. 협상기간 중 런던시장에 임명된 새뮤얼의 셸은 영업실적이 나빠지고 로열더치는 잇따라 신규유전 발굴에 성공했던 뒤끝이라 셸 40%, 로열더치 60%라는 지분 조건으로 통합법인 로열더치셸이 탄생했다. 다급해진 록펠러의 스탠더드오일은 1910년 통합법인을 요즘 가치로 219억달러에 인수하겠다며 접근하는 한편 유럽 시장에서 덤핑 공세를 펼쳤지만 미국 시장 역진출로 맞선 로열더치셸은 2강 구도를 정착시켰다. 미국의 반트러스트법으로 스탠더드오일이 갈라져 겉으로는 ‘7자매(메이저 7개사)’ 체제로 바뀌었지만 당시 형성된 석유시장 지배구도는 여전하다. 로열더치셸의 완벽한 통합은 2004년에서야 마무리됐다. 영국과 네덜란드 두 나라에 내던 세금을 네덜란드에만 납부하고 두 개의 이사회도 하나로 합쳤다. 40대60이라는 지분구도도 없어졌다. 새뮤얼의 결정까지 소급하면 통합에 106년이라는 세월이 걸린 셈이다. 합병이란 이처럼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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