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제가 3ㆍ4분기에 20년만에 가장 빠른 7.2%의 고도성장을 기록한 것은 이라크 전쟁으로 지연됐던 소비와 투자가 하반기에 몰린데다 조지 W 부시 정부의 감세정책으로 인한 세금 환급분이 9월에 집중된 것에 영향 받은 바 크다. 하지만 실제 미 경제의 최근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미국 경제가 진짜로 회복하고 있다는 여러 정황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따라서 미 정부의 이번 발표는 미국 경제가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는 보다 뚜렷한 증거로서의 의미가 있다.
우선 지난 3년간 미국 경제를 아래로 끌어내린 주범이었던 기업 투자가 무려 11% 증가, 경기 회복에 탄력이 붙었음을 입증했다. 또 미국 경제의 3분의2를 차지하는 소비 부문도 세금 환급에 힘입어 6.6% 늘어났다. 지난 2ㆍ4분기에 이라크 전쟁에 따른 군비 증액으로 정부부문의 지출이 급증해 3.3%의 성장률을 기록했던 것과는 달리 3ㆍ4분기의 성장은 경기 사이클상 상승 모멘텀을 형성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주식시장도 지난해 10월 저점 이래 1년 이상 황소장세(bull market)을 이어가고, 2년 동안 200만명의 실업자를 쏟아냈던 고용시장도 최근들어 안정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4ㆍ4분기에는 7% 대의 높은 성장이 어렵지만, 잠재성장률(3~3.5%) 이상의 성장을 기록하고, 내년에도 4% 이상의 성장이 가능할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
미국의 높은 성장률은 내년 대선을 앞둔 부시 정부에 힘을 실어주고, 미국 경제가 일본과 유럽 경제에 비해 강인한 저력을 갖고 있음을 다시금 확인케 했다. 미국 경제는 90년대 10년 장기 호황으로 거대한 거품이 형성됐고, 증권시장과 정보기술(IT) 산업의 거품이 꺼지면서 경기침체와 저성장을 거쳤으나, 3년만에 빠르게 회복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이 80년대말에 비슷한 거품 경제를 형성했다가 15년 가까이 침체의 늪에서 허우적 거린 것과는 대조적이다.
미국이 일본과 달랐던 것은 여러 가지 이유로 설명할 수 있다. 먼저 중앙은행과 연방정부가 즉각적이고 과감한 경기부양책을 채택했다는 사실이다. 2001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6.5%였던 단기금리를 1%대까지 인하했고, 부시 행정부는 재정 적자가 불어나는 위험에도 불구하고 적자예산을 편성, 과감하게 세금을 깎아주었다. 이에 비해 일본은 정치적인 장벽에 부딪혀 은행 구조조정을 차일피일하다가 10여년의 긴 세월을 보내야 했다.
둘째, 미국 기업들이 과감하게 구조조정을 단행했다는 점이다. 경기가 악화되자, 미국 기업들은 수백만의 일자리를 줄이고, 설비를 감축한 덕분에 올들어 수익을 회복했다. 해고의 자유가 근로자들에겐 죽을 맛의 조건이지만, 경제를 거시적으로 관찰할 때 빠른 시일에 경기를 회복시켜 새로운 일자리를 만든다는 미국식 노동시장의 강점을 입증한 것이다.
문제는 미국 경제의 회복이 나홀로 회복이라는 점이다. 94년부터 2002년까지 미국 경제는 전세계에서 창출된 부의 증가분 가운데 96%를 차지했다는 것이 모건스탠리의 이코노미스트 스티븐 로치의 분석이다. 90년대 후반 미국 경제가 호황이었을 때 달러 강세를 통해 미국의 부가 다른 나라에 이동해 전세계가 고루 호황을 구가했는데, 지금은 미국이 달러 약세정책을 취해 자국의 경기 회복의 효과가 다른 나라에 전달되는데 지연되고 있다. 유럽 대륙에서 올해 0.4%의 극히 저조한 성장이 전망되고, 한국의 대미 수출이 3개월째 감소하고 있는 것이 이런 조건을 설명해주고 있다.
<뉴욕=김인영특파원 inkim@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