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되풀이되는 실패

국호1호 숭례문에 화재사고가 난 지 11일 만인 21일 오전, 정부중앙청사에 또 불이 났다. 다행히 출동한 소방대에 의해 30여분 만에 불은 꺼지고 인명피해도 없었다. 하지만 지난 1999년 화재로 적잖은 피해를 입었던 정부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과거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고 이를 실천하지 못했다. 청사에는 여전히 스프링클러 등 기본적인 소방설비가 설치되지 않았다. 예산 문제도 있을 것이고 공사기간 중 공무원들이 일할 사무공간이 마땅하지 않다는 점 등이 그 이유였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런 핑계만 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는 숭례문 화재를 통해 목조건축물에 대한 체계적인 진화작업 매뉴얼이나 훈련이 부족하고 가스식 소화설비나 지붕에 구멍을 뚫고 물을 뿌릴 수 있는 첨단 설비도 없고 문화재청과 소방당국 간의 긴밀한 협조체계에 구멍이 뚫려 있다는 사실을 하나씩 알게 됐다. 따라서 문화재청을 포함한 정부와 소방당국ㆍ지방자치단체는 효율적인 문화재 화재진압 방법을 맞춤형으로 연구하고 필요한 소방설비를 갖춰가야 할 것이다. 예산ㆍ인력부족 탓은 그만 하고 현실에 안 맞는 소방설비 관련 규제도 실용적 관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화재뿐만이 아니다. 충남 서해안지역 어민 등에게 큰 시름을 안겨준 허베이 스피리트호 원유유출 사고에서도 우리는 과거의 실패를 ‘보약’으로 만들지 못했다. 정부는 시프린스호 원유유출사고 후 숱한 매뉴얼ㆍ로드맵을 만들었다고 했지만 사고가 나자 당장 눈에 보이는 기름을 치우기에만 바빴다. 오랜 기간 방제작업을 하며 휘발성 발암물질에 시달린 현지 주민들 중에는 실명을 하거나 두통 등에 시달리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이 같은 피해상황을 사고 초기부터 체크해야 하는 보건당국은 손을 놓고 있었다고 한다. 어민 등의 피해를 체계적으로 조사해 증거로 만들고 최대한의 손해배상ㆍ보상금을 신속하게 받아낼 수 있도록 법률적으로 지원하는 시스템도 여전히 부실하다. 어민 등이 배상ㆍ보상금을 받기 전에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주민들에게 미리 생계비 등을 지원한 뒤 정부에서 구상권을 행사하는 방안 등을 담은 특별법은 최근에야 국회 농림해양수산위원회를 통과, 오는 26일 본회의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새 정부가 이 같은 실패의 교훈을 잘 새기고 소방ㆍ방재 관련 예산은 물론 조직체계를 효율화하는 데 힘 써주기를 바라는 마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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