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턱없는 미국의 통상압력(사설)

미국은 도대체 기본 상도의도 모르는 나라인가.클린턴 2기 내각의 통상각료들은 하나같이 우리나라에 대한 시장개방압력을 강화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샬린 바셰프스키 미 무역대표부 대표는 지난 29일 상원 인준청문회에서 앞으로 4년간 대외통상정책 목표를 설명하는 가운데 일본 중국 캐나다등과 함께 한국을 주요 시장개방 대상국으로 지목했다고 한다. 미국의 대한 시장개방 압력은 자동차 통신 서비스분야등을 주요 타깃으로 하고 있다. 미국은 그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보복하겠다며 으름장을 놓는 것도 잊지 않는다. 미국이 일본이나 중국에 대해서 시장개방을 요구하는 것은 이들 나라와의 교역에서 큰 적자를 보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그와는 정반대이다. 작년에만도 1백10억달러 수준의 적자를 기록했다(미국측 계산으로는 36억달러). 이같은 적자는 한미교역사에서 우리가 기록한 최대 규모의 적자이고, 앞으로도 당분간 해소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 일차적 원인은 미국시장에서 한국상품의 경쟁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가의 식량 및 원자재, 무기 등을 미국에서 수입할 수밖에 없는 여건 탓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시장이 너무 급속하고 광범하게 개방돼 외제품 수입이 홍수를 이루고 있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이유다. 미국이 주도하는 자유무역체제에 동참하면서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유무역의 틀 속에서 생존을 꾀할 수밖에 없고, 국제무역질서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미국의 노력을 과소평가 할 이유도 없다. 다만 미국이 시장개방 문제를 거론함에 있어 상대국의 형편에 대한 신중하고 현실감 있는 고려가 미흡하다는 점을 지적해야겠다. 안팎의 복합적인 이유로 인해 한국경제는 지금 위기상황에 빠져 있다. 그런 한국을 상대로 개방압력 운운 하는 것은 현실적이지도 않고 한국민의 감정을 고려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링거액이 필요한 환자에게서 피를 뽑는 것과 같은 행위다. 자동차시장 개방문제만 하더라도 만성 무역적자라는 한일교역의 특수성으로 인해 일본차의 수입만이 억제되고 있는 상황인데 이 시장의 개방이 한미양국경제에 미칠 영향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예외없는 개방」이라는 명분에 집착할 일 만은 아니다. 아울러 정부는 이 시점에서 대미 통상외교의 방향을 재설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 개도국에서 개미처럼 벌어다 미국과 일본이라는 두 거구에 털어 넣은 결과 2백억달러가 넘는 무역적자를 낸 것으로도 모자라 개방압력, 보복협박까지 당하는 신세가 과연 합당한 것인지 근본부터 다시 생각해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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