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투기세력 방치않겠다" 5개월만에 시장 개입

■ 정부 '煥투기와의 전쟁' 선포<br>"환시채 5兆 남았다" 실탄규모까지 공개<br>방어 의지강해 당분간 1,000원 지킬듯<br>일부 "환율하락은 대세" 회의적 시각도

정부가 환시장에 역외 투기세력들의 움직임이 감지되자 즉각 행동에 들어갔다. 정부의 대규모 시장개입은 지난해 11월 이후 5개월 만이다. 사실상 역외 환투기세력에 대한 전쟁을 선포한 것이다. 10일 원ㆍ달러 환율은 시장이 열리자마자 전날보다 2원 떨어진 999원을 기록하며 하락세를 이어갔다. 1,000원대 붕괴는 지난 9일 저녁부터 이미 예상됐던 일이다. 런던 역외선물환시장(NDF)에 이어 뉴욕시장에서 원ㆍ달러 환율 1,000원선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직접적인 이유는 엔ㆍ달러 환율의 급락이었다. 11일 발표될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규모가 당초보다 클 것이라는 전망으로 엔화환율은 이틀 연속 하락세를 이어갔다. 일이 그쯤에서 끝났으면 좋았는데 세계 최대 외환보유국인 일본의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외환보유액 운용을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원ㆍ달러 환율은 직격탄을 맞았다. 날개가 꺾인 듯 거침없이 989원까지 추락하자 정부도 더이상 방관할 수 없었다. 역외시장에서 환투기의 조짐마저 일고 있는 상황에서 그동안 취해온 스무딩오퍼레이션(미세조정)만으로는 환율급락을 막기는 힘들었다. 진동수 재정경제부 차관이 “올 환시채 발행분 7조원 가운데 차환분을 제외한 5조원을 활용해 적극 대응할 것”이라며 구체적인 실탄규모까지 공개한 데 이어 박승 한은 총재가 “투기세력의 개입에 대해 방치하지 않겠다”고 경고하자 이내 시장은 안정세로 돌아갔다. 이날 원ㆍ달러 환율은 이달 들어 거래된 6일 변동폭을 모두 합친 18원70전보다 많은 19원이 움직였다. 외환시장은 6시간 동안 천당과 지옥을 오고 갔다. 시장의 관심은 정부가 1,000원대를 언제까지 지켜낼 수 있을까에 모아졌다. 정부 안팎에서는 당분간 1,000원대가 고수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날 2번에 걸친 대규모 개입으로 추락하는 환율을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외국계 은행의 한 딜러는 “당분간 1,000원대를 깨고 내려가기는 힘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박 총재도 “오는 4월께 40억달러로 추정되는 외국인 배당금 송금 등으로 인해 수급이 안정될 것”이라며 환율상승에 대한 기대감을 재차 표시했다. 물론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정부가 이처럼 강력한 개입에 나서고 있지만 환율하락은 대세라는 것. 시중은행의 한 딜러는 “배당금 및 외국인 매도물량 등 규모가 큰 매수세력들의 수요가 대부분 3월 말이나 4월 초에 잡혀 있어 정부가 그때까지 현 수준을 지킬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무조건적으로 방어에 나서기가 버거운 것도 사실”이라며 고충을 털어놓았다. 정부의 또 다른 관계자는 “원화가 절상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어찌 보면 좋은 일 아니냐”며 “다만 속도가 문제일 뿐”이라는 말도 했다. 하락을 용인할 수밖에 없으면서도 단기적으로 연착륙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겠다는 게 정부의 정확한 입장인 셈이다. 시장 관계자들은 정부가 이번에 역외 투기세력에 대해 강력히 대응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정부가 어설프게 개입할 경우 투기세력들이 오히려 기승을 부릴 수 있다”며 “대규모 개입으로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박 총재도 투기세력의 경우 개입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 만큼 단호한 입장이다. 다만 달러약세라는 대세를 막기 위해서는 정부의 직접적인 개입과 함께 국제적인 공조가 필요한 실정이다. 박 총재가 ‘역(逆)플라자합의’와 같은 국제협약의 필요성을 주장한 것도 맥을 같이한다. 그러나 각 나라간 입장이 서로 달라 공조가 현실화되기까지는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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