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사는 20대 직장인 박지훈(가명)씨는 퇴근길에 끼니 해결을 위해 편의점을 자주 찾는다. 박씨가 지난 18일 저녁식사용으로 고른 제품은 탄산음료를 덤으로 주는 3,500원짜리 한식 도시락. 박씨는 "특별히 선호하는 제품은 없으며 그때그 때 가격조건이 좋은 상품을 고를 뿐"이라며 "얼마 안 되는 월급으로 보증금 대출 원금과 이자, 월세에 공과금까지 내야 해 먹고 입는 데 돈 쓰는 것은 사치"라고 말했다.
연말 쇼핑 대목을 맞아 대형백화점 등이 대대적인 할인행사에 나섰지만 필수지출마저 줄이는 소비심리 위축으로 유통업계가 깊은 시름에 빠졌다. 올 초만 해도 소비회복 기대감이 있었지만 지난해보다 연말 분위기가 더 썰렁해지자 불황이 일상화된 일본 소비시장과 흡사하다는 얘기마저 나온다. 일각에서는 내수시장의 가격파괴나 출혈경쟁에도 사람들이 지갑을 열지 않던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따라가는 게 아니냐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19일 한국은행과 관련업계에 따르면 소비심리지수는 올 초 109까지 개선됐으나 지난달 105를 기록하며 다시 연중 최저 수준으로 곤두박질쳤다. 또 최근 글로벌 여론조사 업체인 닐슨이 발표한 '소비심리 및 지출의향 조사'에서 우리나라는 60개국 중 55위를 기록했다. 42위인 일본보다 낮은 충격적인 수준이다.
이런 탓에 국내 유통산업은 백화점·대형마트 등 대형시설을 찾는 사람은 줄고 편의점과 값싼 SPA(제조·유통 일괄형 의류), 초저가 생활용품점만 희희낙락이다. 1991년을 기점으로 백화점 소비는 감소하고 저가 편의식품을 앞세운 편의점은 늘어났던 일본 장기 복합불황 도입기와 비슷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러다 보니 유통·외식업체들이 거의 연중 반값할인 행사를 진행하다시피 하고 가격인하까지 나서는데도 소비자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지출을 억제하고 있다. 이 역시 과거 일본과 닮았다.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수석 연구위원은 "한국 소비시장은 1991~1995년 일본의 장기불황 초기와 유사하다"며 "저물가에서 디플레이션으로 넘어가는 기로에 선 만큼 기업은 단순 가격파괴보다 소비자의 본질적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신제품과 신사업 발굴에 골몰하고 정부는 규제완화 등 소비 활성화를 위해 적극 지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