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듬직한 후배들이 있어서 마음이 든든합니다."
지난 21일 밤 서울 종각역 인근의 한 빈대떡집. 김석동(사진) 금융위원장과 국장 이상 간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25일 퇴임을 앞둔 김 위원장의 환송회였다.
이날 김 위원장은 후배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소폭(소주폭탄)'도 수차례 돌았다. 금융위의 한 관계자는 "간부들이 믿고 잘 따라줘서 고맙다는 말을 전하셨다"고 말했다.
'영원한 대책반장'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현직에서 물러난다. 임기는 약 10개월 남았지만 새 정부에 부담을 주지 않겠다는 의도다.
22일 금융위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25일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식에 참석한 뒤 오후5시께 한국프레스센터에 있는 금융위에서 이임식을 할 예정이다. 김 위원장은 "떠나야 할 때 떠나지 않아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인 공직자들을 많이 목격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은 위기의 한복판에서 일을 해왔다. 옛 재정경제원 외화자금과장 시절이던 1997년 외환위기를 맞았고 2003년 금융감독위원회에서 일할 때는 카드대란을 이겨냈다. 재정경제부 1차관을 하던 2007년에는 부동산 문제가 심각했다. 위기의 중심에 서 있으면서도 빠른 상황판단과 추진력으로 상황을 극복해왔다는 평가를 받았다. '대책반장'이라는 별명도 그래서 붙여졌다.
2008년 퇴직 후 농협경제연구소장으로 있던 그는 다시 국가의 부름을 받았다. '저축은행 사태'가 터지기 직전인 2010년 말 금융위원장으로 돌아온 것이다. 탈도 많았지만 김 위원장은 2011년 이후 26개 저축은행의 구조조정을 마쳤고 가계부채 문제와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율을 개편했다. 지난해 2월에는 하나금융그룹과 외환은행 노동조합의 노사 합의도 이끌었다.
안타까운 부분도 많았다. 공직을 건 마지막 작품이라고 했던 자본시장통합법은 끝내 통과시키지 못했다. 우리금융지주의 민영화 작업에서도 쓴맛을 봤다. 결과적으로 산업으로서의 금융업은 위기극복이 우선이라는 논리에 밀려 한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김 위원장은 당분간 가족여행을 하고 관심 분야인 동아시아 고대사 연구에 몰두할 계획이다. 고대사 관련 정식 학위과정에 도전할 생각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