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이 현대중공업이 갖고 있던 현대차 주식 5,000억원어치를 매입했다. 1차적으로는 경영상황이 좋지 않은 현대중공업을 간접적으로 돕기 위함이지만 이번 지분 매입으로 정 부회장은 경영권의 안정성을 더욱 확보할 수 있게 됐다.
24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정 부회장은 현대중공업이 보유한 현대차 주식 440만주 중 316만4,550주를 사들였다.
이번 거래는 장 마감 후 시간외 대량매매를 통해 이뤄졌다. 주당 가격은 이날 현대차 종가인 15만8,000원으로 전체 매매대금은 4,999억9,890만원이었다. 이로써 정 부회장은 기존 보유주식 6,445주(보통주 기준)와 이날 매입한 316만4,550주를 더해 총 317만995주(1.44%)의 현대차 주식을 보유하게 됐다.
현대차그룹과 현대중공업 소식통에 따르면 이번 거래는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현대중공업이 현대차 보유지분 중 일부를 매각하기로 결정하면서 시작됐다.
현대중공업이 조단위 적자를 내면서 현금이 부족해졌고, 이를 충당하기 위해 유동화가 쉬운 현대차 주식 매각을 결정한 것이다.
하지만 이 주식을 시장에 팔 경우 현대차의 지분 구조상 대주주들의 경영권 안정성이 흔들릴 수 있었다.
이에 따라 현대차그룹측은 중공업측에 매각 대상 주식을 정의선 부회장 본인이 사겠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현대차그룹은 우호 지분인 현대중공업 보유 현대차 지분이 제3자에게 매각될 경우 현대차의 안정적 경영에 영향을 줄 수 있고 또 지분이 시장에서 매각되면 주가에 영향을 주게 돼 주주 가치가 훼손될 우려가 있었다ㅣ.
현대차의 한 관계자는 "현대중공업 노조가 갖고 있는 현대차 등 일부 보유 주식을 처분하라는 요구를 했었다"며 "현대차 물량이 대규모로 시장에 풀리면 주가가 급락할 수 있기 때문에 이번에 정 부회장이 매입하게 된 것"이라고 했다.
정부가 그룹들의 지분 구조에 대한 법규를 강화한 것도 이번 주식 매입에 영향을 줬다.
현대차그룹 계열사들은 신규순환출자 금지 규정으로 인해 현대차 추가 지분 취득이 불가능하고 현대차의 자사주 매입은 규정(증권발행 및 공시에 관한 규정)상 대량물량 일괄인수가 불가능하다.
정 부회장으로선 이런 현실적 제한 상황에서 현대중공업이 경영권을 강화하기 위한 기회로 삼을 수 있었던 셈이다.
재계에서 이번 조치를 1석2조로 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경영실적 악화로 고전하고 있는 현대중공업의 자금난을 덜어주고 향후 지배구조 개편을 위한 밑거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지난 6월 말 기준으로 정 부회장은 현대차 주식을 298주만 보유하고 있다. 보유비율로는 사실상 0%에 가까운 수준이다. 1대 주주는 현대모비스로 20.78%를 갖고 있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정 부회장이 경영승계를 위해서는 현대모비스 지분을 크게 늘려야 한다고 보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현대중공업으로부터 일부 현대차 지분을 넘겨 받으면서 일정 부분 지분을 소유하게 됐다. 정 부회장이 현대차 주식을 1.44% 갖게 되면 정몽구 회장(5.17%)에 이어 3번째로 현대차 지분을 많이 갖게 된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범현대가인 현대중공업을 돕고 정 부회장의 현대차 경영권도 일정 부분 강화하는 측면이 있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현대차그룹은 이에 대해 "정의선 부회장의 이번 현대차 지분매입은 순수하게 안정적 경영과 주주가치 훼손 방지를 위한 차원"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