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동십자각] '소연무찬' 가격할인

국내 대형유통업체들의 매출대비 영업이익률은 6~8%대다. 지난해 우량 상장 기업들이 대략 8%대였던 점을 감안하면 그리 낮은 것이 아니다. 파는 것에 비해 이익이 박하다고 둘러대기도 하지만 괜찮은 수익을 내는 셈이다. 주부들이 이 같은 기업 속사정을 알기 때문인지, 아니면 앓는 소리에 익숙해졌기 때문인지 연초부터 대형유통업체들이 잇따라 벌이는 가격 할인행사에 반갑다는 느낌보다 '물건값 낮추기 전에는 도대체 얼마나 이윤을 남겼을까'하는 의문부터 먼저 갖는다. 팔아도 남는 게 별로 없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 습성 때문이라고 여길 수도 있지만 물가가 너무 올라 심기가 불편한 주부들 시각으로 보면 할인행사들이 말 그대로 소연무찬(騷宴無餐·번잡한 잔치에 정작 먹을 것 없다)인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대형마트들이 내거는 가격 할인이 대부분 3개월 안에 끝나거나 실제 밥상 물가 부담을 줄여주는 품목도 많지 않다. 수백가지 할인 품목 가운데 정작 경쟁사 간 가격을 비교해 싸게 살 수 있는 가짓수는 손에 꼽을 정도다. 물가억제 시책을 잘 따르고 있고 경쟁사만큼은 우리도 한다는 것을 알리는 데 급급한 행사도 적지 않다. 대형할인점 이마트가 한 달 전부터 가격을 내린 한 라면 품목을 기업형슈퍼마켓 롯데슈퍼가 뒤늦게 같은 할인 가격에 내놓는 식이다. 아무리 물가가 오르더라도 기업 이윤추구와 시장경제 원칙을 무시하는 요구는 정당화될 수 없다. 하지만 막강한 바잉파워(구매력)로 수익성을 높일 수 있는 것이 유통업인 점을 고려해보면 최근 대형업체들의 알맹이 빠진 할인행사는 최선이 될 수 없다. 가령 채소가격이 오를 기미가 보이면 대형마트는 사전 계약으로 생산지 가격을 낮추고 이윤 폭은 크게 줄이지 않는다. 일부 품목의 경우 일정 이윤을 유지하고 판매가 급격히 줄지 않는다면 사실상 가격이 오를수록 이득이다. 이를 반영하듯 실질적인 가격 할인의 노력 없이 시선 끌기에만 집착한 행사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 대형유통업체들은 생산자로부터 대량구매와 수급 예측을 통해 값을 조정하고 내려 팔 수 있는 강점을 갖고 있다. 가격 인하를 상쇄하기 위해 매출을 무한대로 늘려야 살아남을 수 있는 제조업체들이 가질 수 없는 무기를 갖는 셈이다. 꼭 필요한 상품을 장기간 싼 가격으로 판다면야 시끄러운 '10원 떼기'싸움이라도 반길 소비자들은 얼마든지 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