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엔저 올라 탄 일본차 미국 시장 뒤흔드나

닛산 가격인하 덕에 판매 크게 늘자 미국 업계 바짝 긴장<br>도요타 등 '초토화 작전' 동참 땐 출혈경쟁 확산 우려


일본 닛산자동차가 지난달 가격인하로 미국 시장 내 매출을 크게 늘리면서 미국 자동차 업계가 일본발 '가격전쟁'에 휘말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엔저를 등에 업은 가격인하 전략이 도요타 등으로 번질 경우 금융위기 이후 혹독한 구조조정과 수익성 개선으로 겨우 되살아난 미국 자동차 업계가 다시 출혈경쟁에 뛰어들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블룸버그통신은 닛산이 지난달 7개 모델의 가격인하와 인센티브 확대를 발표한 결과 지난달 미국 시장 판매가 25% 늘어나고 시장점유율이 1%포인트 증가한 7.9%에 달했다고 1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판매증가율은 업계 평균의 약 3배에 달하고 점유율 증가폭도 가장 높은 수준이다.


닛산차가 이처럼 과감한 가격인하 정책을 펼 수 있었던 것은 지난해 11월 이후 지속된 엔화약세 덕분이다. 모건스탠리 분석에 따르면 엔화가치가 지난해 10월 말 이후 15%가량 절하되면서 일본 자동차 업계는 자동차 한대당 1,500달러 수준의 가격인하 또는 그에 상응하는 혜택을 제공할 여지를 갖게 됐다. 닛산은 일본 기업이 엔화약세를 이용해 공격적인 저가 마케팅에 나서는 첫 조짐이라고 통신은 지적했다.

이러한 닛산의 저가공세는 미국 자동차 업계를 바짝 긴장시키고 있다. 지난 5월 현재 닛산의 미국 내 시장점유율은 7위로 시장의 흐름을 주도할 만한 영향력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닛산의 저가 마케팅에 자극 받은 도요타자동차가 움직일 경우 미국 업체들도 가만히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바클레이스의 자동차 담당 애널리스트인 브라이언 존슨은 "닛산이 계속 이런 추세로 나간다면 그 다음에는 도요타가 움직일 것"이라며 "GM이나 포드이 닛산에 대해서는 크게 우려하지 않지만 도요타는 시장가격을 결정하는 플레이어로 인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도요타가 가격인하 대열에 합류할 경우 수익을 갉아먹는 저가경쟁이 업계 전반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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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리서치 업체인 에드먼즈닷컴의 마이클 크렙스 애널리스트도 "닛산의 전략은 어떤 희생을 치러서라도 시장점유율과 판매실적을 확대하려는 '초토화 작전'"이라고 설명했다. 지난달 닛산이 발표한 가격인하 대상은 미국 내 판매의 65%를 차지하는 7개 차종으로 인하폭은 580~4,400달러에 달한다. 자동차 정보제공 업체 오토데이터는 지난달 닛산이 제공한 인센티브가 전년비 5.8% 늘어난 대당 2,805달러로 업계 평균을 141달러가량 웃돈다고 추정했다고 전했다.

시장의 키를 쥔 도요타는 매출이 부진한 일부 차종에 대해 500달러 수준의 캐시백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아직 선별적인 가격혜택을 주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앞으로도 닛산에 대응해 인센티브 정책을 바꿀 필요성이 없다는 것이 도요타의 공식 입장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도요타 등 다른 일본 업체들이 닛산과 달리 암암리에 가격인하에 동참할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모건스탠리의 애덤스 존스 애널리스트는 "일본 기업들이 비난을 무릅쓰고 가격인하에 나설 것이라고는 보지 않는다"며 "대신 새로운 모델을 내놓으면 기능을 추가하고 가격은 그대로 유지하는 형태의 "조용한 가격전쟁"에 비중을 둘 수 있다"고 말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GM 등 미국 업체들은 이미 일본 업체들에 대응하기 시작했다. GM은 최근 닛산의 전기차 리프 가격이 18% 인하된 데 대응해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 볼트 2013년형의 가격을 4,000달러 인하했다. 5일에는 뷰익 등 일부 차종들에 한해 오일 교환을 비롯한 무료수리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존슨 애널리스트는 "차량 한대당 가격을 1,000달러 내리면 수익이 4% 줄어든다"고 전제한 뒤 "적정수익을 5%로 보는 자동차 업계에서 1,000달러를 인하하면 해당 차종이 적자 모델로 전락할 수 있다"며 일본발 가격전쟁에 우려를 표했다.


신경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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