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순교자들 어떻게 생을 바칠 수 있었을까

'남한산성' 이후 4년만에 소설 '흑산' 펴낸 김훈

"오늘 아침에도 다윈의 '종의 기원'을 다시 꺼내 100페이지를 읽다 나왔습니다. 다윈이 말하는 진화라는 것은 수억만년의 시공을 건너가면서 생명을 변화시켜야만 자기 생명을 전할 수 있는 것이죠. 하지만 다윈의 진화 속에 인류의 목표가 있다고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과거 천주교 순교자나 배교자들이 꿈꾸던 자유나 사랑의 목표가 만나는 미래를 그려 보려고 했습니다." 소설가 김훈(63ㆍ사진)이 펴낸 새 소설 '흑산(黑山)'의 속 표지에는 새 한 마리가 날아간다. 지느러미가 달린 몸은 물고기 같고 다리는 말처럼 길며 수염까지 기른 이 기괴한 새는 김 작가가 직접 그리고 '가고가리'라 명명한 창조물이다. '흑산'의 출간을 기념해 20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음식점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내 소설에서 배교자나 순교자들이 진화의 앞날을 향해 수억만년의 시공을 건너가는 존재로 읽혀지길 바랐다"며 "표지 그림은 이 책의 내용을 나타내는 표상"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소설은 신유박해(1801)부터 병인양요(1866) 사이에 벌어졌던 천주교 박해를 배경으로 사회를 개혁하려 했던 인물들의 꿈과 좌절을 담은 작품이다. 정약전과 황사영 이야기를 축으로 조정과 양반 지식인, 중인 마부, 노비 등 다양한 계층의 인물이 등장한다. 그는 "천주교 이야기이지만 신앙인으로서 쓴 것은 아니고 관찰자의 시각을 견지했다"며 "많은 순교자들과 더 많은 배교자들이 등장하며 그 누구도 주인공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번 작품은 일산에 사는 그가 자유로를 타고 서울에 드나들면서 절두산(切頭山)을 보면서 구상됐다. 1만명이 넘는 천주교인들이 순교했던 그 곳을 바라보다 올해 4월 집필을 시작해 5개월 만에 탈고했다. "정약전은 배교를 하고 세상으로 돌아와 유배지 흑산에서 물고기를 들여다보며 '자산어보'를 썼습니다. 책도 언어도 문자도 없는 섬에서 오로지 물고기만 들여다보던 그의 생애를 생각하며 나는 답답함과 기막힌 슬픔을 느꼈고 소설 속에 그런 슬픔에 배어 있을 겁니다. " 이번 작품은 그가 2007년 펴낸 '남한산성' 이후 4년만의 신작이다. 그동안 충무공의 삶을 담은 '칼의 노래(2001)'로 100만부, 가야 악사 우륵의 이야기를 펼친 '현의 노래(2004)'로 30만부,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그린 '남한산성(2007)'으로 60만부 등 200만부 판매고를 올린 베스트셀러 작가이기에 이번 작품에 대한 출판계와 독자들의 기대도 크다. 하지만 그의 작품의 주인공이 기본적으로 작가 자신이라는 점에서 '동어반복'이라는 지적도 있다. 김훈은 이에 대해 "이는 나뿐만이 아니라 언어가 갖고 있는 기본적인 비극"이라며 "거기서 어떻게 헤어나오느냐가 글을 쓰는 자들의 문제"라고 말했다. "저는 진화의 끝에 사랑이나 자유가 있다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이죠. 이 책은 나의 의심으로부터 조금 벗어나기 위해 쓴 겁니다. 자신의 생각을 증명하려고 생을 바친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하고 고민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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