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금융투자 업계는 사상 최악의 힘든 시기를 보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7~9월 62개 증권사의 전체 영업이익은 4,780억원으로 전년 동기(8,572억원) 대비 44.2%나 줄었으며 당기순이익은 971억원으로 전년 동기(6,746억원)에 비해 85.6% 급감했다. 62개 증권사 중 약 40%인 24개사는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올해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경제신문이 증권사 최고경영자(CEO) 2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중 35%는 올해 영업이익 목표를 사상 최악의 실적을 기록했던 지난해 대비 '10% 이내 증가'로 잡았다. 오히려 전체 응답자 중 15% 정도는 올해 영업이익 목표치를 지난해보다 더 낮게 설정했다. 증권사들의 몸집 줄이기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많은 증권사가 대규모 구조조정을 했지만 올해도 구조조정을 계획하고 있다는 응답이 4분의1에 달했다.
◇영업용순자본비율(NCR) 규제 완화로 숨통 틔워줘야=응답자들은 증권 업계 위기 극복을 위해 가장 시급한 과제로 NCR 규제 완화를 꼽았다.
금융정책 측면에서 증권 업계의 위기 극복을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을 묻자 응답자의 38.1%가 'NCR 규제 완화'라고 답했다. 응답자 중 76.2%는 과도한 NCR 규제가 증권사들의 신규사업 투자를 제한하고 있으며 특히 지난해 5대 대형 증권사에 허용된 신용공여사업(14.3%)도 NCR 규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답했다.
증권 업계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대형 증권사가 자기자본을 확대함으로써 다양한 투자은행(IB) 업무를 진행할 수 있도록 물꼬를 터줬지만 실상은 NCR 규제로 막혀 있다"며 "은행과 같이 현실적인 자본규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금융감독원은 국내 증권사에 NCR를 최소 150% 이상으로 유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금융 당국의 NCR 규제가 은행의 건전성 관련 기준인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에 비해 과도하다고 지적한다. 한국거래소와 국민연금 등의 기관은 더 까다롭다. 한국거래소는 주식워런트증권(ELW)을 상장하거나 유동성공급자(LP), 장외파생상품(CCP) 청산회원 자격요건, 그리고 합성 상장지수펀드(ETF) 거래를 하려는 증권사에 NCR 250% 이상을 요구하고 있다. 국민연금의 경우 얼마 전까지 국내 주식 거래 증권사 선정 때 적용하는 NCR 만점 기준을 450%로 유지하다 지난달에서야 그나마 250%로 낮춘 바 있다.
거래기관들의 요구에 맞추기 위해 국내 증권사들은 NCR를 지나치게 높게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말 1~5위 대형사들의 NCR는 529%, 6~20위 중소형사는 422%, 21위 이하의 소형사는 660%에 달한다. 이는 일본 상위 5개 대형사 평균인 361%를 크게 웃도는 것이다. 자본시장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국내 증권업 전체의 NCR가 현재 475% 정도인데 200%포인트 낮춘 275%면 약 12조원의 자본여력이 발생하고 추가로 100%포인트 낮추면 18조원의 자본여력이 생긴다"고 분석했다. 이는 현재 증권 업계 총 자본(38조 8,000원)의 약 절반 수준이다.
금융 당국도 업계의 이 같은 인식에는 공감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말 '금융업 경쟁력 강화 방안'을 발표하고 올 1·4분기 안에 금융투자 업계의 의견과 해외 사례 등을 참고해 NCR 규제 완화 방안을 내놓겠다고 밝힌 바 있다.
NCR 규제 완화와 관련해 가장 선호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응답자의 66.7%가 '은행의 BIS와 같은 방식으로 전환'이라고 답했다. 은행이 BIS비율 8%만 유지하면 되는 것처럼 증권사도 NCR를 150% 이상만 유지하면 사업을 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증권사는 창의적인 상품 개발하고 M&A 통한 구조조정해야=증권 업계의 위기는 증권사가 자초한 부분도 크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유가증권시장의 일평균 거래대금은 전년 대비 16.7% 줄었으며 거래량은 32.7% 감소했다. 증시자금도 지속적으로 빠져나갔다. 국내 주식형 펀드는 지난 2008년 85조8,000억원 규모에서 지난해 65조원으로 줄어드는 등 5년째 순유출을 기록했다. 이런 가운데 비슷한 조직을 갖추고 차별성 없는 상품을 내놓는 증권사들이 우후죽순으로 늘어나면서 서로의 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다.
증권사 CEO의 42.9%는 주식시장으로 자금이 들어오게 하기 위한 방법으로 '증권사들이 창의적인 재테크 상품을 발굴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어 '한시적 세금혜택을 통한 자금 유입 유도(20%)' '연기금 등의 안전자산 중심 투자정책 변화(20%)' 등을 꼽았다. 또 증권 업계 스스로 위기 극복을 위해 가장 노력해야 할 부분에 대해서도 전체 응답자의 81.0%가 '상품경쟁력 강화를 통한 차별화된 상품 개발'이라고 답했다. 반면 '인력과 조직 재편을 통한 구조조정'은 9.5%에 그쳤다. 한 증권사 대표는 "인력 감축을 통한 수익성 개선은 금방 효과가 나타나지만 단기적인 처방에 불과하다"고 지적하며 "증권업이 장기불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고객들의 필요에 맞는 중위험·중수익 상품이나 매력 있는 해외 상품을 참고해 새 상품을 선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전체 증권사의 수는 시장 규모에 비해 지나치게 많다는 지적이 나왔다. 응답자 중 절반은 현재 증권사 가운데 50%가 없어져야 한다고 답했다. 우리나라에 적절한 증권사 수에 대해 응답자의 47.6%가 30여개라고 답했으며 28.6%는 현재 전체 증권사의 3분의1로 줄여야 한다고 응답했다.
다만 금융 당국의 유인책에도 불구하고 증권사 간 인수합병(M&A)은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전체 응답자의 61.9%가 M&A가 활발하게 이뤄지기 힘들 것이라고 답했다. 그 이유로 "증권업의 장기침체로 업 자체에 대한 매력도가 떨어진데다 대부분 증권사의 사업 포트폴리오가 비슷해 시너지 효과가 작다"고 말했다. 정부의 M&A 촉진 방안이 특별한 매력이 없다는 지적도 있었다.
@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