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원화, 국제통화로 가려면

무역이 시작된 아주 먼 옛날부터 화폐는 수요와 공급의 가치척도를 위한 중요 수단이었다. 세계무역을 주름잡던 네덜란드인들이 만든 화폐 '길더'는 상인들의 조합으로 합의된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된 돈 중의 하나라고 필자는 알고 있다. 무역이 융성했던 나라는 돈 관리에 문제가 생긴다. 돈에 관한 '홍역'을 치른다는 것은 그만큼 밝은 미래로 향하는 산고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지난 2002년 1월1일 정식으로 통용되기 시작한 유로화의 시행규칙들이 선포되기 몇해 전부터 영국 정부는 보유하고 있던 엄청난 양의 금을 팔아버렸다. 다른 서구 여러 나라들도 똑같은 조치를 취하면서 금값은 폭락했다. 이것은 세계무역의 패권과정에서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이 세계의 부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1816년 만든 금본위제도의 궁극적 종언을 의미한다. 사실 금본위제도는 30년의 대공황으로 이미 끝났지만 2차 세계대전 후 돈의 패권의 열쇠를 잡게 된 미국이 금을 담보로 달러를 발행했으며 달러보유고의 중앙은행 역할을 해왔다. 유럽연합(EU) 국가들이 2002년 1월1일 미국으로부터 경제주권 독립을 선언하고 유럽화폐단위(ECU)를 발표하면서 현재의 유럽 돈인 '유로'가 탄생했다. 화폐학자들은 화폐의 과잉공급 때문에 오늘날의 실업이 존재한다고 이야기한다. 산업혁명 이후 새롭게 개량된 자동화시설, 컴퓨터의 발명과 대량 생산체제 덕분에 공급은 점차 넘쳐났다. 수요가 없는 것일까. 물론 제3세계의 수요는 있지만 세계적으로 인정된 외화를 주고 물건을 사겠다는 수요는 없다. 제3세계에 공짜로 원조를 하면 되지만 가격상실을 우려해 물건을 바다에 빠뜨리는 것이 물가안정을 위해 낫다는 것이 오늘날 화폐 공급체제의 현실이다. 화폐 공급과잉과 과잉생산(Over Capacity)을 누가 해결할 수 있을까. 결국 물건을 사고 팔며 돈을 챙기는 국제상인들의 몫이 아니겠는가. 그들의 바른 판단력이 경제의 표준화를 이룩한다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아시아 상인들간의 솔직한 개방→과감한 행동→사랑으로 승화된 성격→해결된 공동의 한 시장→아시아의 돈'의 순서를 따르거나 EU가 보여준 증명된 유로화의 순서를 따라야 한다. 93년 1월1일부터 한 유럽시장(Single Market) 안에서 유럽 역내간 자본과 노동서비스의 자유이동이 시작됐다. 유럽은 과거 20년간 미국의 눈치를 봐야 했다. 하나의 유럽시장을 만들기로 한 그들의 결정은 자연적 현상이 아닌 정치적 의지였다. 그들은 오랜 시간동안 고통스런 시장 구조조정을 먼저 실행하고 협력을 통한 상호의존관계를 구축했다.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한, 거시적이고 미시적인 사항 등을 그들 국민들에게 이해시키고 합의를 받아냈다. 특히 두번의 세계대전으로 쌓여진 적대관계를 풀고 보장된 미래의 평화와 공존을 위해 그리고 후손을 위한 선물로서 아픈 상처, 즉 냉전의 유산을 뒤로한 채 미래의 돈인 유로화와 최대의 안정된 시장경제를 탄생시킨 것이다. 한편 유로화는 유럽에 혼돈스런 문제들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예측도 나왔다. 그러나 적대적 관계에 있던 독일과 프랑스가 더 밝은 미래를 위해 과거의 불편했던 관계를 화해와 협조로 청산하며 그러한 예측을 불식시켰다. 유로화가 통용되기도 전인 2000년 당시에 국제계약의 50%를 유로화로 결제하는 기적을 이룬 것이다. 그러나 유로의 탄생은 다른 한편으로 국제금융을 재편, 복잡하게 얽힌 달러와 유로의 이해관계가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는 속담처럼 아시아와 한국이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에 빠지는 이유를 제공하기도 했다. 필자는 현재의 세계정세로 볼 때 다시 몇년 전처럼 아시아와 한국이 흥하고 망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원화를 국제통화로 자리매김하는 것을 간단하고 쉽게 생각하는 것은 큰 오산이다. 철저히 준비되지 않은 청사진은 오히려 더 문제다. 모든 계획은 건전한 잣대로 철저히 평가받아야 한다. 유럽인들은 유로화의 관리인이 되기보다는 유로화로써 그들의 경제를 관리하도록 유도했다. 이것은 영국이 금본위제도로 시작해 결국 그 제도로 인해 붕괴된 것과 같은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철저한 의지를 암시한다. 더 나아가 진정한 세계의 돈으로 발돋움하겠다는 포부를 엿볼 수 있다. 그들은 그렇게 해야만 실패의 전철을 밟지 않고 성공할 것이라는 사실을 역사를 통해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박영신<네덜란드 보나미텍스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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