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동십자각] 영어, 동북아 허브의 조건

오현환 <사회부 차장>

초등학교 5학년 2학기부터 호주ㆍ캐나다 등 해외로 전학해 1년6개월간 다니다 돌아와 중학교에 진학하는 조기 영어연수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있다. 하숙업을 하는 교민들이 학부모 역할까지 도맡아줘 부모가 따라가지 않아도 영어에 대한 말문을 틀 수 있다는 점 때문에 2,500만원 내외의 거금도 선뜻 던진다는 것. 월 20만~30만원씩 내고 국내에서 원어민이 가르치는 학원에 다니는 초등학생들도 적지않다. 언어가 급속히 발달하는 이 무렵에 영어의 말문을 터놔야 나중에 고생을 덜한다는 부모들의 생각 때문이다. 이 학부모들은 일부로부터 ‘영어 광풍’이라는 비난까지 받지만 오히려 급변하는 시대의 요구를 잘 꿰뚫고 준비하고 있다는 게 솔직한 판단이다. 우리나라의 제조업은 오를 만큼 올라버린 고임금으로 공동화의 위기를 맞고 있다. 해결책으로 글로벌ㆍ첨단화를 통해 제조업의 생존을 모색하는 한편 물류ㆍ금융 중심의 동북아 허브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허브국가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외국인들이 살기에 편해야 한다. 언어에 대한 자유로움은 허브국가ㆍ허브도시의 기본이다. 동남아시아의 작은 도시국가 싱가포르는 허브로 성공했다. 물론 한자와 더불어 영어를 공용어로 삼고 있다. 싱가포르는 지난 80년대 후반부터 세계적인 대학을 적극 유치, 물류ㆍ금융허브에서 교육허브로 나아가고 있다. 인도가 소프트웨어(SW) 부문에서 급성장한 것 역시 영어를 공용어로 채택했기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동남아와 달리 동북아에는 거대한 경쟁 국가가 둘이나 있다. 중국은 놀라운 속도로 뛰고 있고 일본의 벽 역시 엄청 높다. 중국은 우리보다 10년이나 앞당겨 초등학교에서 주당 5시간씩 영어를 가르칠 정도다. 우리나라는 97년부터 초등학교에서 고작 주당 한(3ㆍ4학년), 두(5ㆍ6학년) 시간만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손님을 맞을 기본적인 언어환경도 없이 돈과 사람과 화물이 몰려 오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난센스다. 3대 경제자유구역과 제주국제자유도시에 시험적으로 영어를 공용어로 도입하자. 초등학교 때 영어에 좀더 많이 노출될 수 있도록 시간과 프로그램을 늘려주자. 문화의 생명력이 언어에 달려 있음을 간과하는 게 아니다. 한글의 국제화를 적극 추진하면서도 언어에 자유로운 국민이 되도록 당국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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