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7월 2일] 막 오른 그린차 표준화전쟁

김기찬(한국자동차산업학회장·가톨릭대 교수)

태산에 오르면 천하가 보이고 동산에 오르면 마을이 보인다. 세상을 읽는 눈의 고도에 따라 3가지 유형의 경영자가 있다. 첫째, 태산의 고도에서 천하를 읽고 사업을 일으키는 아키텍트(architect)형이다. 아키텍트는 메가 트렌드를 읽어내는 사회 관찰자인 동시에 구상력ㆍ결단력을 가지고 산업의 구조를 만들어 낸다. 둘째, 산 중턱에서 정상으로 조직을 이끌어가는 리더형이다. 리더는 운전대를 잡고 조직의 방향관리(direction management)에 초점을 둔다. 셋째, 산 밑에서 밭을 갈면서 일을 진척시키고 투입 효율성에 관심이 많은 관리자(manager)형이다. 기술보다 시장관리에 승패 좌우
그런데 격변기일수록 아키텍트형 경영자의 선제적ㆍ선구자적 역할이 중요하다. 위대한 기업은 아키텍트를 가진 행운이 있었다. 지난 1980년대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의 반도체 생산 결정은 삼성이 소니를 추월하는 계기가 됐다. 그는 아날로그 시대를 넘어 디지털 시대를 준비하는 설계자였다. 1960년대 소양강댐 건설이 시작될 때 고 정주영 회장은 툭하면 홍수 피해를 입어 배나무와 논두렁뿐이던 서울 압구정동 땅을 구입, 압구정동 현대아파트의 탄생을 준비했다. 아키텍트의 선제적 대응이 돋보이는 사례다. 세계 자동차 산업은 100여년간 업계를 이끌어 온 미국 빅3가 무너지면서 급격히 재편의 시대로 빠져들고 있다. 시장에서는 전통적 내연기관이 아닌 친환경 그린차에 대한 사회적 욕구가 폭발하고 있다. ‘그린(Green)과 클린(Clean)’의 시대가 오고 있다. 한국 자동차 산업은 중소형차에서 선전했지만 친환경차에서는 갈 길이 멀다. 연비 경쟁도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환경을 거역하고 바꾸려는 자는 모두 지구상에서 사라졌다. 자기를 바꿔 적응하는 자만 살아남았다. 다윈의 자연 선택 이론이다. 제너럴모터스(GM)는 환경에 거역하다 좌초했다. 미국에서는 고비용구조를 피하기 위해 ‘자동차 산업의 월마트ㆍ아이팟’이 등장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월마트나 아이팟은 동아시아ㆍ중국이라는 저비용 공급 기반을 통해 미국 시장 비즈니스에 성공했다. 한국의 자동차 산업도 이제 미래의 저비용 미국 자동차 산업에 대응할 수 있는 비용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동시에 그린차에 대한 준비 방법도 바꿔야 한다. 하이브리드차 기술은 일본의 특허 기술에 포위돼 있다. 하지만 하이브리드차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아직 2% 이하에 머물고 있다. 곧 미국 중심의 전기차와 일본 중심의 하이브리드차가 세계 표준을 차지하기 위한 ‘미ㆍ일 표준 전쟁’을 시작할 것이다. 세계 표준 전쟁에서의 승패는 기술력보다 시장 관리력에 좌우된다. 1980년대 세계 홈비디오 표준 전쟁에서 일본 JVC(VHS 방식)가 소니(베타 방식)에 승리한 것이 이를 증명한다. 도요타가 GM에 하이브리드 기술을 공여하겠다고 제안한 것도 ‘사실상의 표준화(de facto standardization)’를 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 오바마 정부는 일본보다 경쟁력이 떨어지는 하이브리드차 대신 새로운 친환경차로 도전을 시작할 것이다. 美 주도 플랫폼 동참 전략을
우리 기업은 엄청난 비용을 투입해야 하는 ‘친환경차 전쟁’에서 세계 표준화 기술을 예상하고 준비해야 한다. 이 난국에 홀로(stand alone) 갈 것인가. 플랫폼에 동참할 것인가. 우리의 그린차 전략은 선제 전략보다 동승 또는 편승 전략이 바람직하다. 표준화 주도자와 손을 잡아야 한다.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듯 한국 자동차 업체들은 순망치한의 심정으로 미국이 주도하는 친환경차 플랫폼에 동참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매우 중요한 결정이다. 기술이 있는 일본이 아니라 시장이 있는 미국에서 표준화가 주도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우리 자동차 산업에도 태산의 고도에서 메가 트렌드를 읽는 전략안(戰略眼)으로 사업을 그려내는 원대한 설계자(grand designer)가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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