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국내 한 금융지주사는 계열사 대표들을 불러모아 워크숍을 열었다. 그룹 내 새로운 경영 전략 도출을 위해 머리를 맞댄 자리다. 난상토론이 이어지는 과정에서 일부는 "다른 은행들처럼 가끔은 비 올 때 고객의 우산을 뺏기도 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현실론을 제기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중소기업을 강조하는 분위기를 거스르는 주장이지만 부실화에 대한 은행권의 위기감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방증한다.
올 상반기 전년보다 많게는 50%까지 순이익 감소를 겪고 있는 금융회사들이 '리스크관리'에서 돌파구를 찾고 있다. 신규 먹거리 확보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부실을 최소화해 손실을 줄이겠다는 논리다.
하지만 이는 개인신용대출 시장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신용등급이 양호한 초우량 고객들에게는 대출이 쏠리는 반면 저신용계층은 대부업체들도 대출을 기피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우량 고객 쏠림 심화=A시중은행은 우량 고객들에게는 본부장 특인제도를 적극 활용해 우대금리를 적용해주라는 지침을 영업점에 내려 보내고 있다. 개인신용대출의 경우 1~3등급에게는 저신용등급보다 최대 1%포인트 가까이 금리를 우대해준다. 기업대출과 마찬가지로 개인신용대출에서도 우량 고객 유치를 위한 은행들의 경쟁이 치열해졌기 때문이다.
이를 반영하듯 최근 금융회사들의 전체 신용대출자산 중 1~3등급 비중만 상승하고 있다. 지난 6월 말 기준 1등급 비중은 전체의 14.59%로 전년 같은 기간(12.37%) 대비 2.22%포인트 증가했다. 2등급이나 3등급 역시 같은 기간 각각 0.71%포인트, 0.17%포인트 증가했다.
반면 신용등급 7ㆍ8ㆍ9등급의 저신용 고객 비중은 같은 기간 각각 0.65%포인트, 0.75%포인트, 0.13%포인트 감소하며 대조를 보였다. 문영배 나이스평가정보 CB연구소장은 "금융회사들이 우량 고객 위주의 마케팅을 진행하고 있다"며 "높은 등급에 대한 신용 공급은 확대된 반면 저신용자에 대한 대출은 축소됐다"고 분석했다.
◇대부업체도 외면하는 저신용 고객=10월 현재 대부업체 대출 이용 고객의 가중평균 등급은7.8등급이다. 주로 7~9등급 고객들이 대부업체 소액신용대출을 통해 자금을 조달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최근엔 대부업체들마저 저신용 고객을 외면하고 있다.
최근 2~3년 사이 법정 최고이자율이 49%에서 39%까지 인하되면서 수익률이 급감하자 등급이 우량한 고객에게 영업을 확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업계의 한 관계자는 "조금이라도 등급이 좋은 고객을 유치해 부실률을 1%가량 낮추면 원가 비용은 1.5배 정도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며 "5ㆍ6등급을 대상으로 여신을 늘리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말 대부업체 이용 고객을 대상으로 10%대 후반 금리의 'KB착한대출' 상품을 출시한 KB저축은행 역시 신규 대출의 80%는 1~7등급 고객에게 몰려 있다. 대부업체 주거래 고객인 8ㆍ9등급 위주로 여신을 운용할 경우 높은 부실률 때문에 역마진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처럼 양극화 현상이 심해지면서 저신용ㆍ저소득 서민금융의 공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금융계의 한 관계자는 "저신용자는 민간 금융회사가 지원하는 데 한계가 존재하는 만큼 내년에 출범하는 통합 서민금융기관에서 좀 더 체계적인 지원 상품을 내놔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