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나랏빚, 공기업 부채로 세탁까지… 불신 자초

■ 예산 타령하더니… 나랏돈 150조 '낮잠'<br>중복 지출등 고질적 병폐에 주먹구구식 나라살림 운용<br>"결산심의 6월로 앞당겨야"

미국ㆍ유럽이 국가 부채의 늪에서 허우적거리자 우리 정부는 연일 국가 재정을 튼튼히 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불요불급한 지출을 줄이는 대신 적재적소만을 골라 돈을 쓰면 재정적자를 면할 수 있고 결과적으로 나랏빚 증가를 막을 수 있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17일 국회의 '2010년도 결산 공청회'에서 드러난 정부의 재정운용 성적표는 기대 이하였다. 정부가 혈세를 거둬놓고서는 정작 필요한 곳에 충분히 지출하지 않고 쓸데없는 사업에 낭비하는 사례가 허다했다. ◇주먹구구식 예산 집행=이날 공청회에서 전문가들은 비슷한 성격의 사업에 나랏돈이 중복 지출되는 사례는 이젠 고질병 수준이라고 비판했다. 김태일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는 "2010년 결산분석에서 유사ㆍ중복사업이 20건 존재하는데 이들에 투입된 예산규모는 지난해 8조9,319억원, 올해에도 8조1,926억원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박형수 한국조세연구원 예산분석센터장은 정부가 쌈짓돈처럼 쓰는 예비비의 낭비 문제를 꼬집었다. 2010회계연도 예비비 집행에 있어 2조1,000억원 규모의 다소 부적정한 집행사례가 발견됐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지식경제부의 '무역보험기금 추가 출연(500억원 배정)' ▦고용노동부의 '취업장려수당사업(약 116억원 배정)'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국회의원 재보궐선거관리사업(약 101억원 배정)' 등이 꼽혔다. 이원희 한경대 행정학과 교수는 정부 부처들이 관행적으로 매년 말이면 사업을 이월시키고 밀어내기식 예산을 집행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그는 "계속비 사업은 매년 일정액을 사업에 배정하는데 이 돈이 제대로 지출되지 않고 상당 부분 불용자금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숨겨진 정부 부채'로 불신 자초=정부의 부채가 사실상 공기업 부채로 세탁돼 숨겨져 있는 것도 우리 재정건전성 지표에 대한 불신을 키우는 요인으로 지목됐다. 김성식 한나라당 의원은 "정부가 일반 재정사업으로 집행해야 할 것을 공기업에 떠넘기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며 "외국신용평가기관들도 우리 정부만의 재정건전성보다는 공기업을 포함한 재정문제에 더 관심을 갖고 있더라"고 역설했다. 문제점으로 지적된 것은 재정지출뿐만이 아니다. 세입을 포함한 재정수입 추정치를 정부가 편의적 잣대로 늘리거나 줄이는 것도 개선돼야 할 병폐로 꼽혔다. 세입에 대해 정부가 적게 돈이 걷힐 경우 면피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과소추계하는 경우가 흔하다는 것이다. 반대로 세외 수입의 경우 유입 여부가 불투명한 자금까지 미리 부풀려 잡아 예산에 포함시킴으로써 실제보다 부풀려지는 측면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였다. 김 교수는 "기획재정부는 매년 기업은행 지분 매각 대금으로 1조원 이상을 (세외수입으로 삼아) 예산에 반영했으나 실제 매각은 이뤄지지 않았다"며 "국토해양부의 혁신도시특별회계나 산림청 일반회계 토지매각대의 낮은 수납률 등도 마찬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고 말했다. 공청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이 같은 고질적 관행을 견제하려면 국회가 매년 9월에 실시하는 결산 심의 시기를 6월 말 이전으로 앞당겨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재정부는 매년 6월 말까지 각 부처에서 이듬해 요구안을 일괄적으로 모아 새해 예산안을 작성하고 있다. 하지만 전년도 예산 집행에 대한 국회의 평가가 그 전에 이뤄져야 전년도의 오류를 새해 예산안 작성 과정에서도 되풀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울러 예비비 등 예산 집행실적에 대해 정부가 분기별로 중간보고를 하도록 의무화해 국회와 정부가 더 효율적인 예산안을 함께 논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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