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4월30일] 이슬람 스페인 정복


711년 4월30일 밤, 북아프리카를 출발한 이슬람 군대 1,700명이 서고트 왕국이 지배하는 이베리아 반도(지금의 스페인)에 발을 들였다. 왜 그랬을까. 설이 분분하다. 세도가 로데릭에게 왕위를 찬탈 당한 서고트 왕족들이 구원을 요청했기 때문이라는 설이 지배적인 가운데 본격적인 침공을 위한 사전 정찰이었다는 해석도 있다. 분명한 사실은 별다른 저항을 받지 않았다는 점. 이슬람군이 상륙한 지점은 곧 ‘지브롤터’라는 지명을 얻었다. 이슬람 군대를 지휘한 타리크(Tariq)가 처음 밟았던 바위언덕을 뜻하는 아라비아어 ‘Gibr Tariq’가 변해 지브롤터로 굳어졌다. 교두보를 확보한 이슬람군은 파죽지세로 이베리아 반도를 휩쓸었다. 732년 샤를마뉴가 피레네 산맥 근처의 전투에서 승리하고서야 기독교 세계는 이슬람의 동진을 가까스로 막을 수 있었다. 사라센 제국의 통치를 받게 된 이베리아 반도는 학정과 탄압에 신음했을까. 그 반대다. 이슬람의 종교적 관용 속에 찬란한 문화가 피어났다. 이슬람이 건설한 도시 코르도바는 바그다드와 콘스탄티노플에 견줄 수 있는 서방 최고의 도시로 손꼽혔다. 스페인에 세계의 관광객이 몰리는 이유에도 1492년 기독교도에게 재정복될 때까지 781년간 아름다운 건축물과 정원을 건축했던 이슬람의 문화유산이 깔려 있다. 이교도 중 최대의 수혜계층은 유대인. 이슬람 군대의 최고사령관까지 오른 인물도 있다. 19세기 초까지 전세계 유대인을 이끌었던 ‘세파르딤(Sephardim)’이라는 유대문화도 이때 형성된 것이다. 관용의 역사는 오늘날 비극과 원한으로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은혜를 입었던 기독교와 유대인들이 이슬람을 원수로 대하고 있는 탓이다. 복수가 복수를 낳은 구도의 피해자는 인류 전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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