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생활

[심층진단] 기존 인건비 등 돈 쓸 곳 많은데 신규 채용에만 쓰라니 …

창업 지원 한다면서 제도는 후퇴

용역비 부풀리고 허위보고서 작성

용처 꿰맞추기 등 꼼수만 부추겨

불법 도와주는 브로커까지 활개

한정화(왼쪽 네번째) 중소기업청장과 예비 창업인들이 지난해 8월 대구 동구 '스마트벤처창업학교' 에서 출범식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중소기업청


#벤처기업을 운영하는 A대표는 지난해 정부에서 주는 창업 지원금 가운데 200만원을 홈페이지 제작비로 썼다. 그러나 정작 B업체에 의뢰해 홈페이지를 만드는 데 지출한 비용은 50만원. 나머지 150만원은 이른바 '돌려쓰기'를 통해 다시 A대표의 손에 들어왔다.

#청년창업가 C대표는 외주 용역비 명목으로 허위 보고서를 만들어 정부 자금을 받았다. 서류상에 등장하는 D업체와는 사전에 입을 맞춘 뒤 받은 돈의 5%를 수수료로 떼어 주었다. C대표는 "팀원들 월급을 주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며 "업계에서는 5~10%의 수수료를 다른 업체에 지불하고 정부자금을 공공연하게 이런 식으로 돌려 사용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창업 활성화를 위해 지원되고 있는 정부 자금이 창업기업들의 현실에 맞지 않는 경직된 집행기준 때문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는커녕 각종 불법·탈법행위를 부추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일 업계에 따르면 창업진흥원의 창업맞춤형사업화 지원사업의 경우 지원금을 기존 인력 인건비로 쓰는 것을 금지하고 오직 신규 취업자 임금으로만 집행하도록 해 창업가들의 집중 성토 대상이 되고 있다. 사업비용 대부분이 인건비인 초기 기업의 경우 자금 용도를 너무 좁게 한정해 이를 활용하기 힘들다는 것.

창업맞춤형사업화 지원자금은 제조업에는 최대 5,000만원, 지식서비스업종에는 최대 3,500만원까지 출연해준다. 이중 △인건비 △외주용역비 △재료비 △기자재 구입 및 임차비 △기술이전비 등을 포함한 '시제품제작비'로 50% 이상 써야 한다. 시제품 제작비에서 인건비는 지식서비스업종의 경우 80%, 이외 업종은 50%까지 가능하다.


최근 창업기업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지식서비스 분야 업체가 3,000만원을 지원 받는다고 가정하면 이중 최대 2,400만원을 인건비로 쓸 수 있다는 얘기다. 지식서비스 분야의 사업기간이 8개월인 것을 감안하면 한 달에 300만원을 쓸 수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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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인건비를 사용하는 규정에는 '본 사업을 위하여 협약기간 내 신규 채용하는 인력(4대보험 가입, 협약 시작일부터 협약종료일 3개월 전까지 신규 채용한 인력)에 한해 협약기간 동안 인건비 산정기준 내에서 현금으로 계상 가능'이라고 돼 있다. 즉, 신규 직원 인건비로만 지급하라는 것.

사정이 이렇자 창업기업 대표들은 기존에 일하던 직원들 월급도 주기 힘든 벤처기업에 정작 필요한 인건비는 신규 채용을 해야만 지급되는 것은 현실과 맞지 않다고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이런 이유로 비용 부풀리기 등을 통해 지원금 용처를 꿰맞추는 꼼수를 부리는 기업들이 줄지어 생겨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실제로 창업기업 대표들은 주변 지인들을 동원해 신규고용한 것처럼 꾸미고 이를 위해 4대보험까지 가입시키고 있다. E대표는 "어떻게든 돈을 마련해 팀원들 급여와 월세를 내는 데 쓰고 있는 상황"이라며 "범법행위를 저지르고 싶지는 않지만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해명했다. 또 "신규 인력에게 줄 수 있는 돈도 학·석사학위 소지자 모두의 경우 170만원으로 한정돼 있어 더 많은 급여를 원하는 개발자들을 채용하기 힘들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창업을 해본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벤처 쪽은 인건비가 대부분의 비중을 차지한다"며 "지원금 중 쓸 수 없는 돈이 많기 때문에 용역비나 기자재 구입비 등으로 돈을 다 돌릴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F대표는 "'지원금 돌려쓰기'를 통해 마련된 돈은 함께 일하고 있는 팀원들의 월급으로 지급한다"며 "(정부가 경직된 기준을 바꿔) 올해에는 괜한 일을 두 번 시키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정부 정책을 비판했다. "엉뚱한 곳에 돈을 쓰거나 자신들의 주머니에 챙기는 것이 아니라 기업을 운영하는 데 쓰기 때문에 당당하다"는 말도 곁들였다.

그러나 이런 편법·탈법이 관행화하면서 창업지원금을 허위로 받을 수 있도록 도와준 대가로 5~10% 수수료를 떼어가는 등 수익을 챙기는 브로커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경직된 창업자금 집행기준 탓에 성실한 창업가들을 불법행위를 내몰게 되는 것은 물론 이 과정에서 지원금 횡령 등의 유혹에까지 빠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벤처업계에서는 정부지원이 많아질수록 지원금에만 의존해 기업을 키우겠다고 생각하는 안일한 기업들이 늘어나는 것은 경계해야 하지만 갑작스럽게 창업 관련 자금이 늘어난 만큼 실효성 있게 제도를 정비하거나 관리를 철저히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이민화 한국벤처협회 명예회장은 "정부지원은 허리띠와 같아서 너무 졸라도, 너무 풀어도 안 되지만 부작용의 비율이 늘어난다면 제도를 다시 한 번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중소기업청 관계자는 여전히 기존 채용인원에 대해서는 인건비 지원을 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는 "창업 활성화를 통한 일자리 창출이 목적인 만큼 새로 고용한 직원에게 지원금을 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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