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물 흐르듯 변하는 것이 法

이제 막 입주를 시작하는 새 아파트는 시끄럽다. 이사를 하는 손놀림 때문이 아니다. 내부 인테리어를 바꾸는 공사소음 때문이다. 건설사측이 획일적으로 꾸민 내부 인테리어를 입주자들이 깔끔히 걷어내고 새로 돈을 들여 꾸미는 것이다. 한 단지 내의 다른 수백가구가 자신의 집과 모두 같은 모양이라면 좋을 리가 있겠는가. 가뜩이나 구조는 한치의 오차도 없이 동일하지 않은가. 고급 마감재가 사용됐다 해도 벽지의 색상이나 내부 몰딩의 모양 등 다른 점에서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새 아파트 주변에는 인테리어회사들의 광고가 덕지덕지 붙고 입주에 앞서 골조 외의 것을 뜯어내는 공사가 한창이다. 적게는 500만원에서 많게는 억대에 이르기까지 그 교체비용도 만만찮은 모양이다. 새 아파트 인테리어 교체를 전문으로 해 새 아파트만을 쫓아다니는 인테리어업체들도 수백곳이라고 하니 가히 그 시장규모가 짐작된다. 그러나 이는 고스란히 낭비다. 뜯어내는 벽지와 바닥재는 건설사의 애초 분양가에 포함된 것이다. 입주민을 위한다면 인테리어는 하지 않은 채 분양가를 그만큼 낮추고 입주민들이 내부 인테리어를 하도록 해야 한다. 아파트 골조만을 짓고 내부 인테리어를 입주자의 손에 넘겨주는 분양방식을 골조분양이라고 한다. 가뜩이나 분양가가 높아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판국에 골조분양 방식이 현실적인 방안인 셈이다. 주택전문가들도 골조분양을 도입하면 분양가를 지금보다 최고 30% 정도까지 낮출 수 있다는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그런데 얼마 전 한 일간지 부동산면에 소개된 골조분양 관련 기사에서 언급된 관련 공무원의 말은 필자를 허탈하게 만들었다. “현행법상 아파트 인허가를 받을 때 마감재까지 설치한 설계도를 제출해야 하기 때문에 골조분양은 불가능하다.” 필요하다면 법을 고쳐야 한다. 국민들의 편에서 해당조항을 합리적으로 바꿔야 한다. 그것이 법이다. 그런데 그 공무원의 대답에서는 그런 모습을 찾을 수가 없었다. `법이 이러니 그만`이라는 식이다. 법이 바뀌어야 한다는 의지조차 없다. 놀고먹는 국회에 복지부동 정부라더니 해당법을 바꿔 분양가를 낮추고 입주민들의 낭비를 줄이는 방안을 생각해볼 여유도 없단 말인가. 법(法)이라는 한자를 꼼꼼히 보면 법이 가져야 할 성격을 읽을 수 있다. 삼수변(水)에 갈거(去). `물이 흐르듯이` 존재하는 것이 법인 셈이다. 물이 흐르듯이 현재의 우리에 맞춰 합리적으로 바뀌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와 분양방식이 같았던 일본이 골조분양을 도입, 초저가 아파트를 탄생시켜 인기를 끌고 있다는 기사는 영영 남의 나라 이야기일 수밖에 없는가. <윤윤수 휠라코리아 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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