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계약으로 재고물량 누적·1억5천만원 손실/판로 막막 OEM한계 절감… 신보도움 위기해소/독자브랜드로 시장공략·중현지공장 건설계획요즘같은 불경기에 중소기업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거래처에서 부도를 맞는 일이다. 여기에다 판로 확보에 급급할 수 밖에 없는 중소기업의 약점을 노린 사기꾼이라도 만난다면 그 충격은 더욱 클 수 밖에 없다. 인천에서 여행용 카트가방을 생산하는 대성산업의 이호성 사장(44)이 최근 직면했던 상황이 바로 이런 케이스다. 지난 6월초 어느날. 이사장은 외부에서 걸려온 전화 한통화를 받고 자신도 모르게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리고 말았다.
대성산업이 얼마전 5만개에 달하는 가방을 공급키로 계약을 체결한 것이 뒤늦게 사기행각으로 드러났으니 더이상 가방을 만들 필요가 없다는 얘기를 전해들었기 때문이다.
그날은 바로 이사장이 마냥 들뜬 기분으로 종업원들을 재촉하며 하루에 4백개씩, 사흘째 납품이 들어가기로 했던 날이었다.
사실 이사장은 처음 한꺼번에 5만개의 가방을 제작해달라는 요구를 접했을때 쉽사리 믿겨지지 않았다. 이사장이 10여년의 사업경력에서 가장 많은 주문을 받았던 것이 2만개였다.
그러나 작년부터 성장 위주의 경영전략을 펼쳐가던 이사장에겐 쉽사리 떨쳐버릴 수 없는 유혹이었다. 그래서 반신반의하면서도 일단 5천개만 계약을 체결한후 나머지는 진행사항을 보아 추후에 공급키로 했다가 이런 뜻하지 않은 사고를 당한 것이다.
다행히 8백개의 가방만 납품된 상태라 그나마 손실을 줄일 수 있었지만 이미 완제품으로 만들어진 4천여개의 가방을 처리하는 것이 문제였다. 더욱이 가방 2만개를 만들 수 있는 원자재까지 미리 확보해놓은 상태여서 금액으로 치면 모두 1억5천만원에 이르는 피해를 입게된 셈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사장은 마냥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이사장은 직접 샘플을 들고 가방을 사줄만한 곳을 일일이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손에는 인천지역에 있는 종업원 2백명 이상의 업체 명단이 들려 있었다.
하지만 이사장은 자체적인 영업망이 없어 대부분 유통업체의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방식에만 의존해 왔던 터였다. 이사장 자신의 영업경험이나 능력이 없다보니 문전박대를 당할뿐 차가운 반응만 돌아왔다.
대성산업은 그 흔한 제품 카탈로그 하나 변변한게 없었다. 이사장은 이때만큼 얼굴없는 주문자상표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낀 적도 없었다.
다만 자신의 제품이 값비싼 외제품에 비해서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확신만이 유일한 영업밑천이었을 뿐이다.
그때 평소 보증관계를 맺고있던 신용보증기금 주안지점(지점장 이경수)은 전국의 각 지점에 전자우편을 보내 대성산업의 가방을 대신 팔아주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그래서 팔린 물량이 1천여개.
이사장은 또 신보의 도움을 받아 여러 보험회사에도 판촉용으로 가방을 판매해 창고에 쌓여있던 물량을 어느정도 해소할 수 있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뛰어다니던 지난달초에는 거래처에서 계획적으로 부도를 내는 바람에 1억원의 부도어음까지 터져 나왔다. 엎친데 덮친 격이었다.
일부 자금은 대출을 받아 간신히 갚았지만 아직 연말까지 해결해야할 상환자금이 남아있는 상태다.
최근에는 영업전선에서 발로 뛴 덕택에 인천의 한 가구업체를 직접 뚫어 1억원어치의 판촉용 가방을 공급키로 계약을 체결했다. 기존 공급선인 유통업체와는 달리 은행에서 할인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자금 운용에 한결 숨통이 트였다.
그러나 이사장은 백화점의 두터운 벽은 도저히 뚫을 수 없었다. 한때 자신의 재고물량을 백화점에서 세일가격으로 판매해 보겠다고 제의해 보았지만 백화점 관계자는 코웃움을 칠 뿐이었다.
대성산업은 이제 「월드 트래블러」라는 고유 브랜드를 붙여 직접 시장을 공략하는데 이어 몇년후엔 중국에 현지공장을 세우는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그것만이 외국산제품에 맞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길이라는 판단이 들어서다.
이사장은 『평소 당좌거래를 전혀 하지 않았던 것도 위기를 넘기는데 큰 도움이 됐다』면서 『처음 지하창고에 갈 곳을 잃어버린 가방이 쌓여있는 것을 볼때는 눈앞이 캄캄했다』고 털어놓았다.
이사장은 이번 경험을 살려 경영기법 개선에도 새로이 눈을 뜨고 있다.
그래서 얼마전 큰 맘을 먹고 컴퓨터와 프린터를 하나 장만했다. 우선 자재 관리와 대금 결제에 관한 것부터 자신이 직접 정리해나갈 작정이다.<정상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