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이 만난 사람] 김종신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원전기술 연내 선진국 따라잡아 한국형 원자로 유럽 넘어 美로…세계에 우수성 알릴 것"
대담=김영기 경제부장 young@sed.co.kr
정리=한영일기자 hanul@sed.co.kr
사진=이호재기자
대체에너지 상용화까진 원전 역할 여전히 중요
향후 안전성 강화 위해 4년간 1조1000억 투입
내달 서울 핵안보정상회의 한국 원전 위상 높일 기회
"올해 말에는 한국 원자력의 완전한 기술독립이 실현될 것입니다. 현재 선진국의 95% 수준까지 올라온 원전기술이 연말에는 100%까지 달성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김종신(사진)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은 1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 내내 자신감과 열의가 넘쳐났다. 지난해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글로벌 원전산업이 냉각기에 들어선 것 아니냐는 우려에도 원전에 대한 믿음은 오히려 확고해진 듯 보였다.
김 사장은 "원자력은 화석연료와 달리 신이 인간에게 준 지혜를 가지고 만들어내는 창조적 에너지"라며 "지혜의 보고에서 나오는 힘인 셈"이라고 원자력에 대한 굳은 신념을 드러냈다.
원전업계에서 40여년간 잔뼈가 굵은 전문가답게 김 사장이 가진 원전 철학은 산업 개념을 뛰어넘는 것이다.
그는 "일부에서 원전에 대한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정말 원전이 인류를 위해 득이 없는 에너지인지 반문해볼 필요가 있다"며 "석유나 석탄 등 대표적인 화석연료는 고갈의 위험과 함께 환경오염 위험이 있고 신재생에너지는 방향은 맞지만 아직 경제성과 기술개발이 더 필요한 단계"라고 강조했다.
김 사장은 그러면서 우리의 원전수출이 유럽을 넘어 반드시 미국시장까지 나아갈 수 있도록 할 것이라는 궁극적인 목표를 내놓았다.
원전은 대체에너지 시대로의 '브리지(다리)'
김 사장은 현실적으로 안정적이고 지속적으로 고급전력을 공급하려면 원전의 역할이 여전히 필요하다는 점을 누누이 강조했다.
"태양광이나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기술이 고도로 발달하고 방사능의 부작용이 전혀 없는 핵융합발전이 상용화되는 시대가 오면 에너지 문제는 해결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때까지는 핵분열을 통해 열과 에너지를 얻는 원전이 '브리지(다리)'의 역할을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 같은 원전의 현실적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후폭풍과 더불어 최근 국내에서 원전이 수 차례 고장을 일으키며 가동 중지돼 국민들은 불안해할 수밖에 없는 상황도 지나칠 수 없는 현실이다.
"원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안전입니다. 원전은 이를 위해 안전과 관련해 굉장히 많은 '촉각'을 보유하도록 설계돼 있지요. 조금만 문제라도 발생하는 즉시 발전기를 세우도록 돼 있습니다. 정지되면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김 사장은 이를 '페일세이프(fail safe)'로 표현했다. 실제로 화력발전소와 같은 정도의 고장이 발생하더라도 화력발전소는 그대로 작동하지만 원전은 중지하도록 설계돼 있다는 이야기다. 오히려 발전소에 이상이 있는데 즉시 정지되지 않고 계속 운전될 경우가 더 큰 문제라는 것이다.
"현재 국내에는 모두 21개의 원전이 가동 중입니다. 전세계 원전의 경우 평균적으로 1기가 1년에 한번은 가동이 중지되는데 우리나라는 지난해 일곱 번의 가동중지에 그쳐 세계적으로도 원전의 안정성이 뛰어납니다."
김 사장은 특히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계기로 국내에도 지진 등 자연재해에 따른 구조물과 설비 안전성에 관련된 다양한 방비책을 추가했다"며 "앞으로 4년간 원전의 안정성 강화를 위해 1조1,000억원을 추가로 투입한다는 계획을 이미 세워놓았다"고 설명했다.
원전 보수적으로 바뀐 국가들 다시 돌아올 것
지난해 후쿠시마 사고 이후 일부 국가가 원전에 보수적인 입장을 보이는 데 대해 그는 "시간 문제일 뿐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일축했다.
"독일이나 스위스도 (원전을) 반대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뾰족한 대안이 없는 상황이고 정치적인 측면이 강합니다."
특히 그는 "독일의 경우 프랑스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원전대국인 프랑스의 원전 문제는 곧 그들의 문제와 직결되는 점을 볼 때 일종의 모순"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54기의 원전을 보유한 일본이 자국 내에서의 원전가동은 보수적으로 하면서 베트남이나 터키 등으로의 해외수출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데 대해 "오래갈 수 없는 도덕적 엇박자"라고 잘라 말했다.
"비록 지난해 후쿠시마 사고로 원자력 르네상스의 분위기가 다소 위축됐지만 우리나라가 원자력 강국으로 선 것은 그동안 외풍에 흔들리지 않고 원전정책을 꾸준히 추진해왔기 때문입니다."
원전은 에너지 경쟁력의 자존심이자 국력 가늠자
실제로 우리나라의 원전역사를 보면 위기를 기회로 활용해왔다. 1978년 미국의 스리마일섬 원전사고가 발생해 원전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우리나라는 이듬해 고리 원전 1호기를 가동하며 원자력 발전을 시작했다.
또 1986년에는 대외적으로 소련 체르노빌 원전사고가 일어났음에도 10년을 내다 본 원자력기본계획을 만들었고 1997년 IMF 외환위기에는 한국형 원자로인 APR1400사업을 시작했다. APR1400은 2010년 UAE 원전수주의 결정적 발판이 됐다.
"원전은 이제 한 나라 에너지 경쟁력의 자존심이자 국력을 가늠할 잣대가 됐습니다. 원전을 도외시한 채 선진국 반열에 오를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우리나라는 원자력발전소 건설과 운영능력에서 이미 세계적 수준에 올라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렇다면 원자로 등 원전의 기술력 측면에서는 어떨까.
"한국의 원전기술은 지난 10년 동안 집중적인 투자와 개발로 선진국의 95% 수준까지 올라섰다고 자부합니다. 하지만 아직 5% 정도가 남아 있는데 이는 올해 말까지 완료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한수원은 UAE 원전수주 이후 해외시장 조기진출을 위해 원전자립 전략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는 상황이다. 원전의 완전자립 역시 당초 내년 6월로 예정됐지만 해외수출 활성화를 위해 6개월가량 앞당기기로 했다.
"올해 말에는 APR1400원자로보다 경제성과 안전성이 한 단계 향상된 1,500㎿급 국산 대형 원자로인 'APR+'의 표준설계 기술개발을 완료할 계획입니다."
한국형 원자로로 유럽ㆍ미국 진출 추진
한수원은 한국형 원자로를 유럽과 미국 등 선진국시장으로 진출하는 방안도 내부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올해 말 한수원이라는 브랜드를 달고 핀란드 원전 수주경쟁에 뛰어들 예정이며 미국시장 진출을 위해 오는 2017년을 목표로 APR1400의 미국 정부 공식인가도 요청해놓았다.
"원자로의 미국 정부 공식인가는 엄청난 자금과 시간이 드는 복잡한 사업이지만 선진국시장 진출확대를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제가 직접 미국을 오가며 챙기고 있습니다."
특히 김 사장이 요즘 해외수출과 함께 잔뜩 신경을 쓰는 것이 코앞으로 다가온 원자력 관련 대형 국제행사다.
한수원은 3월26~27일 국내에서 열리는 '2012 서울 핵안보정상회의'에 앞서 23일부터 이틀간 '원자력인더스트리서밋'을 개최한다.
서울 핵안보정상회의는 세계 50여개국 정상과 4대 국제기구 대표들이 참여하는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정상회의다. 그리고 원자력인더스트리서밋 때는 세계 원자력산업계의 최고경영자(CEO)와 원자력국제기구 대표 등 200여명의 고위급 인사가 참석해 국제회의와 함께 국내 원전도 둘러볼 예정이다.
"3월에 세계가 다시 한번 한국의 원자력계를 주목할 것입니다. 한국 원전산업의 글로벌 입지와 위상을 높이는 데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행사준비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김 사장은 "이번 원자력인더스트리서밋에서는 실추된 원자력에 대한 신뢰회복과 함께 원전의 안전을 높이기 위한 국제적인 노력과 공조 등이 중점적으로 논의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회사 이름 바꿀 것
아울러 한수원은 4월2일 창립기념일을 맞아 사명을 고치고 새 출발을 다짐하는 준비도 진행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강남 삼성동 현대산업개발 건물에 모든 본사 부서가 모이기도 했다. 한수원 조직이 2001년 전력산업 구조개편에 따라 한국전력공사에서 분리된 후 같은 공간에 모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 사장은 "글로벌 시대와 한수원의 새로운 역할에 걸맞은 사명을 만들기 위해 내부용역을 진행하고 있다"면서 "사명개정 작업은 올 창립기념일 이전까지 마무리 지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초 원전서 고리4호기까지 탄생·가동·수출 아우르는 40년 역사 '산 증인'
■김종신 사장은
서울 강남 삼성동의 현대산업개발 빌딩 15층에 있는 김종신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의 집무실. 최근 이사를 마친 탓인지 김 사장은 아직도 이곳을 다소 낯설어한다.
그런 그의 방 한쪽에는 경영방침 네 가지가 액자에 소중히 담겨 있다.
"한수원 사장을 맡은 지 5년이 다 돼가는데 그동안 다른 경영방침은 바꿔왔지만 단 한가지만은 꾸준히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것은 경영방침 중 첫 번째에 자리잡은 '안전 최우선 경영' 항목. 국내 원자력의 산 증인으로 불리는 그가 안전을 얼마나 중요시하는지 대변해주는 대목이다.
2012년 2월은 그에게 평범한 달이 아니다. 그가 원자력과 인연을 맺은 지 꼭 40년이 되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김 사장은 지난 1972년 2월 한국전력공사에 입사해 우리나라 최초의 원자력발전소인 고리발전소 건설현장을 6년간 담당했다. 이어 고리 4호기까지 완공을 진두지휘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우리나라 원자력발전의 탄생과 가동, 해외 수출에 이르기까지 전과정을 아우르는 '살아 있는 원전의 역사'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1970년대 처음 원전을 지을 때만 해도 미국의 웨스팅하우스사가 모든 발전시설을 건설하고 운전하는 이른바 '턴키' 방식의 사업이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 인력은 고작해야 사택을 짓고 모래와 자갈을 운반하는 게 전부였는데 이제는 해외 수출까지 할 정도가 됐다는 점에서 무한한 자부심을 느낍니다."
특히 당시 외국인들은 '한국이 대형 프로젝트르 주도하는 것은 무리고 절대 있을 수 없다'고 비웃었다. 하지만 김 사장을 중심으로 한 국내 기술진은 고리 3ㆍ4호기 건설공사를 깔끔하게 성공시켜 그들을 놀라게 했다.
김 사장은 이후 '원전 10년 자립 프로그램'을 짜는 실무책임자로 일하기도 했다. 1995년에는 한국표준형 원자로를 개발해 원전기술 완전독립의 밑거름 역할을 톡톡히 했다.
2004년 한국서부발전 사장에 이어 2007년부터 한수원 사장으로 일하면서 그는 노사 간 화합 못지 않게 원전과 주변지역 주민과의 화합을 중요하게 챙긴다.
"국민과 지역주민의 신뢰 없는 원자력 지속발전은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지역사회와의 상생은 원전의 또 다른 큰 과제인 셈이지요."
이 같은 그의 경영철학과 원전산업에 대한 열정은 2010년 사장 연임에 성공하는 성과로 이어졌다. 아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특히 그는 원자력 관련 사업 외에 왕성한 대외활동으로도 유명하다.
한국프로젝트경영협회 회장, 학국압력기기공학회 회장, 울산 과기대 이사,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인, 세계원자력협회 이사 등 현재 그가 가진 공식 직함만도 10여여개나 된다.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임에도 그가 얼마나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약력
▦1945년 마산 ▦1972년 서울대 공대 졸업 ▦1972년 한국전력공사 입사 ▦1987년 파리사무소장 ▦1998년 원자력발전처장 ▦2001년 한수원 발전본부장 ▦2004년 한국서부발전 사장 ▦2005년 한국프로젝트경영협회(KPMA) 회장 ▦2006년 금탑산업훈장 ▦2007년 한수원 사장 ▦2011년 세계원자력협회(WNA)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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