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전문변호사 전성시대] <14ㆍ끝> 기업 형사

파생상품ㆍ조세 사건 치밀한 논리로 풀어

기업 형사 분야를 말할 때 더 이상 ‘대기업 회장이 횡령이나 배임 혐의로 수사나 재판 받는 것’을 떠올리는 것은 곤란하다. 기업 범죄의 유형은 다양해지고 범위도 넓어지고 있다. 실제로 현재 발생하고 있는 기업 범죄의 유형은 횡령이나 배임 등과 같이 전통적인 것 뿐만아니라 공정거래에서 조세, 증권거래, 파생금융상품까지 다양하다. 기업의 준법의식이 무뎌지고 있다는 말이 아니다. 그보다는 기업 경영이라는 현상 자체가 복잡해지기 때문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인맥이나 관계를 앞세운 것이 아니라 전문성을 제대로 갖춘 기업 형사 전문 변호사가 필요한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다.

백창훈(56ㆍ사법연수원 13기)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판사 출신으로 굵직한 기업 형사 사건을 맡아 성공적인 변론을 이끈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치밀한 논리를 바탕으로 법정에서 ‘프레젠테이션의 달인’이라는 이야기를 듣는 그의 변론은 다른 로펌에서도 참고자료로 쓸 정도다.


백 변호사는 지난 2012년 이른바 ‘주식연계증권(ELW) 스캘퍼(초단타매매자)’사건에서 전원 무죄 판결을 이끌어냈다. 스캘퍼에게 거래 속도가 더 빠른 전용회선을 제공한 것이 일반 투자자의 피해를 불러왔다며 국내 대표 증권사 12곳의 대표이사와 임원 30여명이 무더기로 법정에 선 사건이었다. 백 변호사는 12개사 중 우리투자와 대우, 대신, HMC투자, KTB투자 등 5개 증권사를 대리했다.

백 변호사는 사건을 맡은 직후 사실관계 파악이나 법리 검토에 앞서 우선 전용회선 제공으로 실제 일반 투자자가 피해를 입었는지부터 따지기 시작했다. 다른 것을 떠나 선량한 투자자가 손해를 봤다면 변론의 명분이 없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었다. 수백만건의 거래 데이터를 분석한 뒤 백 변호사를 비롯한 김앤장 형사팀은 투자자가 피해를 입을 확률이 0.008%에 불과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백 변호사는 “증권 거래를 위한 회선의 속도는 증권사마다 차이가 있다”며 “기소 논리대로라면 다른 곳보다 더 빠른 회선 속도를 제공하는 증권사도 역시 기소가 돼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지난해 1월 12개 증권사는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고 현재 대법원의 최종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백 변호사는 스캘퍼 사건이 국내 기업 형사 분야의 전환점 같은 성격을 갖는다고 말했다. 복잡한 시장의 거래 현상의 위법성을 판단하려면 일단 현상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돼야 하는데 수사와 재판을 계기로 검찰과 법원, 변호사 모두 그 이해도가 업그레이드 됐다는 것이다. 백 변호사는 “다른 기업 형사 사건에도 좋은 예가 된 것 같아 뿌듯하다”며 “단순히 무죄를 받아냈다는 것 이상으로 의미가 크다”고 강조했다.

이밖에 백 변호사는 환 헤지 파생상품인 키코(KIKO)와 관련한 형사사건과 민사 사건 변론을 맡았고, 차입매수(LBO) 방식 인수합병(M&A) 사건을 맡아 무죄로 이끌어내기도 했다.

윤경(53ㆍ연수원 17기)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기업 관련 형사소송 전담 재판부의 법관 출신이다. 판사 재직 시절 옵셔널벤처스 주가조작 혐의로 기소된 김경준씨 사건, 대기업 자녀 주가조작 사건 등 굵직한 재판을 맡았던 높은 성공률로 업계의 인정을 받고 있다.


윤 변호사는 지난해 말 주가조작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았던 한 경제증권방송 전문가 A모씨의 법률 대리를 맡아 윤씨의 불기소 처분을 이끌어 냈다. A씨는 자신이 사들인 특정 종목을 방송에서 추천해 가격을 올리고 자신은 높은 가격에 주식을 판 혐의로 구속영장까지 청구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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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변호사는 방송 추천과 주가 상승의 인과관계에 주목했다. 증권 전문가로서 방송의 영향력을 이용해 시세를 조종한 것은 분명한 위법이지만, 추천을 했다고 곧바로 주가가 올랐다는 점은 보다 엄격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윤 변호사는 “당시 혐의를 받았던 11개 종목의 주가가 오른 다른 이유가 있었다”며 “증권 전문가의 방송출연 행위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진정으로 지대할까 하는 점도 변론 쟁점의 하나였다”고 말했다. 법원은 “보다 엄격하게 기소내용을 판단해야 한다”며 A씨한테 청구된 구속 영장을 기각했다.

윤 변호사는 또 지난해 2차 저축은행 사태 당시 부실 대출을 묵인한 혐의로 기소된 H저축은행 대표 사건을 맡아 일부 혐의에 대한 무죄를 받아냈다. 당시 검찰은 대출금 상환의 용도변경행위를 배임죄로 봤지만, 윤 변호사는 이 행위가 저축은행에 현실적인 손해를 가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주장해 재판부를 설득했다.

윤 변호사는 기업이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점차 커지는 현실이야말로 기업의 준법의식이 높아져야 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그는 “기업범죄의 유형이 다양화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전통적인 범죄 유형인 횡령과 배임이 늘어나는 추세인 것은 흥미로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기업 형사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또 다른 변호사는 부장검사 출신의 염동신(48ㆍ연수원 20기)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가 있다. 염 변호사를 비롯한 세종의 형사팀은 최근 다른 곳과 비교해 많은 수의 사건을 수임하고 있다.

염 변호사는 지난해 하이마트 경영진의 횡령ㆍ배임 사건 대리를 맡아 기소단계까지 효과적인 방어를 펼쳤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금은 사라진 대검 중수부가 수사를 맡아 진행했던 하이마트 사건은 혐의와 관련된 사실관계가 매우 방대하고, 조세와 형사 등 여러 법률적 쟁점이 얽혀 있는 사건이다. 염 변호사가 팀장으로 있는 세종팀은 경영진의 불구속 기소를 이끌어 냈다. 현재 서울중앙지법에서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염 변호사는 또 한 대형 교육업체의 임직원이 뇌물과 조세포탈 혐의로 기소된 사건의 변론을 맡아 불구속 기소는 물론 무죄 확정 판결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염 변호사는 “확정판결로 회사가 그 동안 쌓아온 회사의 명예와 신용이 지켜졌다는 점이 가장 의미 있었다”고 말했다.

이밖에 금융당국에서 고발한 증권시장 ‘테마주’사건의 변론을 맡았고, 국내 대형 회계법인에 대한 주식회사 외부감사법 위반 사건을 맡아 최종적으로 무죄 판결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검사 재직 시절 최초의 ‘첨단범죄수사 수석검사’이기도 했던 염 변호사는 이런 배경을 바탕으로 기업의 영업비밀 침해 사건도 다수 수임하고 있다.

염 변호사는 “기업 형사 변호사들은 이제 산업에 대한 이해를 반드시 해야 한다”며 “조세를 비롯해 공정거래, 지적재산권 같이 다양한 이슈가 혼재돼 있는 경제범죄의 특성상 전문변호사의 전문성이 발휘될 여지가 커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조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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