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그 동안 쌀 이외에 채소ㆍ과실 등 농산물에 대해 변변한 수급 및 가격안정 정책을 쓰지 않고 최대한 시장을 존중해 왔다. 농민들을 위해 쌀 정책만 잘하면 된다는 발상이었다. 물론 농식품부에서 일부 채소 정책을 쓰고 있으며 가격이 많이 오를 경우 그나마 가까운 중국에서 수입하여 가격급등 현상을 줄이기도 했다.
그러나 채소는 부패가 쉬운데다 가격에 비해 부피와 중량이 크고 중국에서도 소비가 느는 추세여서 수입을 통해 국내 수급과 가격을 안정시키는 데 한계가 있다.
재배면적 안정화·저장시설 확충
게다가 채소재배는 기계화가 어렵고 품이 많이 드는 작물로써 농촌인력이 부족한데다 노령화가 심해 재배면적이 줄어들어 수급과 가격의 불안정이 반복되고 있다. 소비는 안정적인 데 반해 국내 공급이 줄고 자급률이 떨어질 경우 기후불순이나 병충해로 생산이 줄면 가격은 더 민감해져 등락이 심해지는 '취약시장'이 된다.
올해 무더위와 폭우, 태풍으로 채소가격이 폭등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고 중국산으로 인해 국내생산이 줄고 자급률이 떨어진 마늘의 경우 올해 중국 내 가격이 급등해 수입이 줄어들어 국내가격이 급등한 사례도 있다.
또 하나 간과할 수 없는 점은 채소의 경우 많은 품목에서 중간 유통 상인 몇 사람이 보이지 않는 독과점력을 발휘해 그들의 의도에 따라 가격이 급등하는 사례가 제법 많다. 산지수집상들에 의해 80~90%가 일명 '밭떼기'로 거래돼 시장에 팔리는 배추ㆍ무ㆍ양배추ㆍ대파는 대상들이 시장가격에 영향을 미치고 미나리 같은 소량거래품목은 불과 대상 몇 명이 시장가격을 쥐락펴락할 수 있다.
이런 점들이 시장실패를 초래해 채소시장을 더 불안정하게 만들어 가격이 예상보다 폭등하는 문제를 낳는다. 채소 생산과 유통 정책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더구나 채소는 국민들의 밥상과 식당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부식재료이기 때문에 장바구니물가에 영향을 많이 주어 시장에만 내맡길 수는 없다. 일본은 주요 채소에 대해 오래 전부터 안정적인 국내생산과 출하조절, 가격안정을 위해 생산과 유통을 강제조정까지 할 수 있는 채소수급안정제도를 추진하고 있다.
정부와 농협에서 채소를 무시하거나 정책을 쓰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 동안 정부는 채소에 대해 채소수급안정 사업을 추진해 협동조합을 통해 계약재배와 과잉 시 산지폐기를 실시했고 산지와 소비지 유통 개선 노력을 했다. 그럼에도 물가당국과 농정당국의 정책적 관심이 상반되어 예산과 정책지원이 부족해 정책추진력이 떨어진 것이 사실이다. 결국 농협의 계약재배사업도 탄력을 잃게 되고 농민들의 관심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농산물은 시장수급실세에 의해 가격이 형성되기 때문에 채소가격을 공산품처럼 일정하게 할 수는 없다. 그것은 사회주의 경제에서나 가능하다. 다만 수급과 가격안정을 유도하는 기반을 만드는 정책을 추진하면 심각한 가격불안정을 막을 수 있다.
우선 생산자조직과 농민 간 계약재배사업을 대폭 확대하여 재배면적을 안정화시키고 유사시 생산조정을 용이하게 해야 한다. 또한 배추ㆍ무ㆍ대파ㆍ양배추 등 80% 이상을 이른 바 '밭떼기' 거래하는 산지수집상들을 계약재배사업에 끌어들여 정책파트너로 삼아야 한다.
주산지의 저온저장시설을 사회간접자본 차원에서 확충하여 채소의 저온저장을 늘려 시간적 분산출하를 유도해야 한다. 대도시 인근에 저온저장시설을 포함한 소비지물류센터를 확충하여 소비지 분산출하를 돕고 태풍ㆍ폭우 등 이상기후로 인한 적기 공급 곤란 등 물류장애를 해소해야 한다.
직거래시장 활성화도 필요
지역적으로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만나 생산농민이 재배한 채소를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직거래시장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최근 고령농민ㆍ영세농ㆍ귀농자들이 늘어나 이들이 생산한 소량의 상품성 없는 농산물을 판매할 수 있는 장터가 절실하다.
미국은 농민시장(Farmer's Market)이 10여 년간 2배로 늘었고 일본도 도로변 판매장인 아침장터(早市)가 많아 직거래가 활발하다. 우리나라도 지역적으로 진정한 직거래시장을 많이 만들어 지역경제도 활성화하고 유통비용을 줄이며 가격안정을 기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