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수필] 카더라 정신

지난번 두차례의 국회 청문회를 저질의 정치쇼라고 이 땅의 언론들은 일제히 비난했다. 가려진 진실은 아무것도 없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이 비난은 부메랑처럼 고스란히 언론에게 되돌아갔다. 국회는 그렇다치고 그럼 언론은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무슨 일을 했느냐, 아무것도 한 일이 없지 않는냐는 것이다.듣고 보니 그렇기는 하다. 이런 사건이 미국에서 터졌다면 아마도 미국의 언론들은 민완형사 못지 않게 조사(수사)활동을 전개했을 것이며 진실의 전모에까지는 육박하지 못할지라도 적어도 진실의 실마리 정도는 찾아내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일로 한국의 언론을 비난하는 것은 가혹하다는 생각도 든다. 태만이나 무능의 탓이 아니라 전통과 이념의 차이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언론은 수사관 뺨치는 조사(수사)를 펼쳐 진실을 밝히는 것을 언론의 사명이자 전통으로 삼는다. 반면 한국의 언론은 이른바 객관보도의 원칙을 지켜 수사관 흉내를 내지 않는 것을 신념으로 삼고 있다. 옛날 언론이 통제되던 시절「…카더라 통신」이라는 말이 자주 쓰였다. 「…카더라」는 「…라더라」의 경상도 사투리이며 언론이 보도하지 않은 사실을 입에서 입으로 옮기는 것을 가리켰다. 그러나 통제가 풀린 오늘에 이르러서도 한국의 언론은 기본적으로는 「…카더라」정신을 계승하고 있다. 언론 밖의 사람에게 「…카더라」를 더이상 맡기지는 않지만 언론 자신이 이젠 「…카더라」하고 있다. 사실은 있는 그대로 다 보도하지만 진실여부는 가리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청문회 기사도 야구 기사처럼 다룬다. 이런 언론의 태도가 옳은 것인지 틀린 것인지는 얼른 판단하기 어렵다. 그렇지 않아도 이땅엔「수사관」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정부 조직상의 정식 수사관만 해도 그 종류와 숫자가 겹치고 많은데 근자엔 일부 민간단체에서까지 수사관 흉내를 내고 있다. 그런 판에 언론까지 진실을 밝힌답시고 사람들의 뒤를 캐고 다닌다면 세상꼴이 어찌될지 장담할 수 없다. 정부의 공식적인 수사가 가끔 미진하고 의도적으로 은폐 축소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정부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혐의는 있으나 증거가 없는 사건」이 얼마든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정부에 대한 신뢰의 문제이며 그 신뢰는 국회정문회, 특검제, 언론의 진실규명 노력 등에 의해 그 진위가 가려지거나 결판될 성질의 것은 아닌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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