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병철ㆍ정주영ㆍ구인회 등 국내 창업세대는 '잘살아보자'는 일념 하나로 대한민국을 선진국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이들 기업인은 단지 자기 자신이나 자신의 회사만 잘되겠다는 생각으로 사업을 하지는 않았다.
이들은 고객과 주주ㆍ종업원ㆍ지역사회 등 기업을 둘러싼 여러 이해관계자에 대한 사회적 책임(CSRㆍ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을 실천함으로써 기업이 지속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미국의 철강왕 카네기, 석유재벌 록펠러,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 등이 과거나 지금이나 훌륭한 기업인으로 손꼽히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이들 기업인은 자신들의 이름을 딴 재단을 설립하고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몸소 실천하며 자선기부문화를 확산하는 데 앞장서왔다.
최근 경제민주화 논란 속에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기업이 성장 위주의 패러다임에 매몰돼 이윤 추구에 집중하다 보니 국민과 국가를 위한 사회적 책임이 조화를 이루지 못한 측면도 있다. 이동근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은 "반기업정서가 만연한 데는 기업이 자초한 측면도 없지 않다"면서도 "기업들이 투자 확대와 고용 창출 등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정당하게 평가 받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의 '삶의 질' 향상에 앞장선 창업주들=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지난 1977년 7월1일 현대건설 창립 3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사재를 출연해 '아산사회복지재단'을 설립했다. 그는 '우리 사회의 가장 불우한 이웃을 돕는다'는 설립 취지에 따라 의료사업, 사회복지 지원사업, 학술연구 지원사업, 장학사업을 지속적으로 수행했다.
아산재단은 대표적으로 현대적 의료시설이 열악했던 정읍ㆍ보성ㆍ영덕ㆍ홍천ㆍ강릉 등 농어촌지역을 비롯, 전국에 대규모 종합병원을 건립해 현재 8곳의 아산병원이 양질의 의료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지금은 북한에 속한 강원도 통천 아산리 출신인 정 명예회장은 다른 지역보다 강원도에 큰 애착을 갖고 홍천ㆍ강릉ㆍ인제(1996년 폐원) 등 3곳에 병원을 세워 산간 오지 주민들이 큰 병이 나면 어쩔 수 없이 치료를 위해 서울까지 이동해야 하는 불편함을 덜어줬다.
LG그룹은 아산보다 앞선 1969년 12월 LG연암문화재단을 설립했다. 초대 이사장을 지낸 고 연암 구인회 LG 창업주에 이어 2대 이사장으로 구자경 LG 명예회장이 뒤를 이었다. LG그룹은 LG상남언론재단ㆍLG상록재단ㆍLG복지재단 등 교육과 문화 발전을 위해 다양한 공익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장학사업으로는 30여년간 2,500명의 대학생에게 장학금을 지원해왔고 대학 교수들에게는 1989년부터 해외연구 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삼성도 1965년 삼성문화재단 설립 이래 삼성복지재단ㆍ삼성생명공익재단ㆍ호암재단을 설립해 사회 각 분야에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2011년 말 '해비치 사회공헌문화재단'의 이름을 '현대차 정몽구 재단'으로 바꾸며 책임 있는 재단 운영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정 회장은 같은 해 8월 5,000억원을 재단에 기탁하는 등 꾸준히 사재를 출연해 총 6,500억원의 기금을 내놓았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은 품질을 높여 제품에 책임을 다하는 데 주력했다"면서 "재단을 통해 앞으로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해 현대차그룹의 위상을 높이고 사회를 위해 헌신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전통적 방식에서 탈피한 사회적 책임 늘어나=현대차그룹은 연초부터 현대차와 기아차의 가격을 인하하며 국내 자동차업계에 '착한 가격' 돌풍을 일으켰다. 쏘나타ㆍ싼타페ㆍK5ㆍK9 등 각 사의 주력제품 가격을 최대 291만원까지 내리자 다른 국내 완성차업체도 이에 동참하고 있다. 내수 불황 탈피를 위한 마케팅적 측면도 있지만 현대차그룹은 "국민들께 오랫동안 사랑 받은 만큼 국민의 행복과 국가 경제발전에 공헌하고자 하는 노력"이라고 강조했다. 이윤 창출만이 아닌 진정한 국민의 기업으로 인정 받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이처럼 사회 전 분야로 확산되고 있다. 과거 '불우이웃 돕기'식의 물질적 지원에서 벗어나 고용ㆍ문화ㆍ복지 등의 혜택을 제공하는 사례가 늘어났다.
올 들어 이 같은 분위기는 더욱 확산되고 있다. 경제민주화 바람과 맞물려 각 기업들은 사회적 책임에 앞장서겠다고 한목소리를 낸다. 빈부격차 해소, 협력업체와의 상생 등 구체적이고 혁신적인 방향의 사회적 책임활동도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재계의 올해 신년사에서도 이런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이건희 삼성 회장은 신년 하례식에서 "기업에게 사회적 책임이 항상 따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구자열 LS그룹 회장은 사회적 책임과 역할 이행을 올해 중점 경영방침 중 하나로 정했다.
신세계그룹 임원진은 연초 '책임경영 선포식'을 열었고 정용진 부회장은 "책임경영을 통해 고객과 사회로부터 사랑 받고 존경 받는 기업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도 신년사에서 "공유가치를 적극 창출하는 기업, 존경을 받는 기업이 되도록 사회 책임을 다하자"고 밝혔다.
재계 관계자는 "전통적인 퍼주기 방식의 지원에서 벗어나 기업이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고 나아가 경제와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상생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이 이어져야 하는 시대에 이르렀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