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국보 1호 魂 되살리자"… 석재·나무 다듬기 일일이 수작업

[컬쳐프론티어] 숭례문 복구단<br>"무너진 자존심 다시 세워야죠" 공사 과정서도 전통기법 복원<br>솜 한복 차림으로 구슬땀 작업<br>"현재 성벽공사 50%정도 완료 올해 말까지 석목작업 끝낼것"


숭례문 복구단의 이정연 사무관(왼쪽부터) 조상순 학예연구사, 최종덕 부단장, 김창준 단장, 조규형 주무관, 송봉규 주무관이 한자리에 모여 숭례문 홍예(아치형 통로)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이들은 잃어버린 숭례문의 역사를 되살리는 사람들이다. / 이호재기자

"땡땡땡땡땡" 종소리 같은 쉼 없는 울림이 남대문로 자동차 소음 속에서 청명하게 울려퍼진다. 종(鍾)이 아니라 정 치는 소리다. 가설 덧집에 둘러싸인 숭례문 복구현장 안에서 기능인들이 망치로 정을 쳐 돌덩이를 다듬는 중이다. 오는 2월10일은 국보 제1호인 숭례문이 화재로 소실된 지 3년이 되는 날이다. 화재 참사 이후 숭례문을 되살리기 위한 발굴과 고증 작업을 거쳐 지금은 본격적인 복구공사가 한창이다. 복구 공사를 총괄 지휘하는 김창준 숭례문 복구단장(문화재청 문화유산국장)과 최종덕 부단장(문화재청 수리기술과장) 등 복구단을 만났다. ◇해뜨면 공사 시작 주말없이 '땡땡땡'=아침 7시 찬바람을 가르고 동이 트기가 무섭게 숭례문 복구공사 현장에는 일꾼들이 모여든다. 해 뜨면 일을 시작해 해가 지면 일을 마무리하는 것이라 여름에는 더 일찍 일과가 시작된다. 문화재청 소속인 숭례문 복구단은 대전 본청이 아닌 숭례문 공사현장 내 가설 사무실로 출근해 일과를 살핀다. 현재 진행 중인 주요 작업은 숭례문 내 석축 공사를 위한 돌 다듬기와 경복궁 안에서 공정 중인 나무 다듬기다. 숭례문 현장 곳곳에는 하얀 솜 한복을 입고 정을 치는 기능인 30여 명이 있다. 전통기법에 입각해 일일이 손으로 자재를 다듬는다. 조선 시대의 공사 과정까지 되살리고자 한복을 입고 작업하는 것을 원칙으로 걸었으되 "한복을 강제하는 것은 아니니 편한 옷을 입으라"고 했으나 "움직이는 데 오히려 편하다"며 솜 한복 차림을 한 사람들이 더 많이 눈에 띈다. 이들 기능인 한 사람이 쓰는 정은 하루 평균 40개에 이른다. 끝없이 울리는 '땡땡' 정소리에는 이들의 땀내가 배어 있다. 정으로 돌을 치면 그 끝이 무뎌지기 때문에 쓰고 던진 정은 현장 내 대장간으로 옮겨지고 대장장이는 전통기법으로 다시 날을 벼려낸다. 경복궁에서 도편수 신응수 대목장의 지휘 아래 진행 중인 치목은 주 연장이 도끼와 자귀다. 숭례문 복구에 매달린 이들은 하루 3끼 식사가 아니라 새참을 포함한 5끼로 힘을 채워간다. 요즘처럼 영하 10도 이하로 기온이 곤두박질치면 돌 공사는 부득이하게 중단된다. 돌 조각이 맘먹은 방향으로 쪼아지지 않기 때문이다. 주말 없이 토ㆍ일요일에도 공사는 계속된다. ◇숭례문 외형은 물론 과정까지 복원=2008년 숭례문 참사 직후 숭례문복구단이 구성됐다. 숭례문의 본래 관리 주체는 서울시 중구청장이지만 불의의 화재 탓에 문화재청이 직접 투입됐다. (본래는 문화재청이 조선시대 궁릉 관리에 집중하고 나머지 관리는 지자체에 위임한다) 김창준 문화재청 문화유산국장을 단장으로 최종덕 수리기술과장이 부단장을 맡았다. 문화재청 수리기술과의 한 개팀 전체가 복구단으로 합류해 총 10명으로 구성됐다. 여기다 기술분과, 방재분과, 고증분과 등 전문가 22명이 자문위원으로 있다. 이들은 끊어진 시간을 연결해 잃어버린 역사를 되살리는 사람들이다. 김 단장은 복구의 의미가 숭례문 외형 뿐 아니라 복원과정까지 모두 아우른다고 강조한다. "복원이라는 용어는 없어진 것을 옛 모습으로 다시 짓는 것이지만 복구는 훼손된 부분을 되살리는 것입니다. 숭례문은 2층 목구조가 대부분 불탔지만 1층 석구조는 90%가 살아남았습니다. 남아있는 부재를 활용해 '복구'하는 것을 기본 개념으로 정의했습니다. 처음 건립된 조선 초기 이후 수차례 공사가 있었기에 불타기 직전의 모습으로 복구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단, 숭례문이 일제시대를 거치며 좌우 양측의 날개 부분도 없어지는 등 많은 변형이 있었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한 회복식 복구를 포함합니다. 모든 복구 과정은 전통기법을 충실히 따르며 기술자와 기능인은 우리나라 최고의 인재들이 참여하도록 한다는 것을 대원칙으로 삼았습니다. " 발굴, 고증, 설계의 과정이 2년간 진행됐고 지난해 초부터 성벽 복구공사에 착수했다. 일부 시민들은 "왜 빨리 짓지 않느냐"고 항의했지만 수습과 정리 이후 발굴과 고증도 중요하다고 판단해 '욕먹기'를 감수했다. 현재 성벽공사는 50% 정도 완료됐고 전체 공정에서 절반쯤 달려온 상황이다. 공사 과정 중 '운반'에서는 부득이하게 현대 기술의 힘을 빌리고 있다. 최 부단장은 "조선 시대에는 운반이 힘드니까 주변에서 채석을 했지만 지금 서울시내에서 돌을 캐는 것이 불가능해 포천에서 돌을 가져오고 예전에 뗏목으로 안면도나 한강으로 들여오던 목재도 트럭으로 들여온다"면서 "소달구지나 도르레를 쓰려면 남대문로 일대 교통을 통제해야 할 정도로 많은 공간이 필요하기에 트럭과 크레인으로 대체하지만 제작만큼은 전통기법을 확실히 따른다"고 강조했다. ◇조선 숭례문 살리고 일제 흔적 지우고=화재 이후 숭례문 발굴 과정에서 조선 초기의 기단은 현재보다 160㎝ 아래에 있었다는 사실이 발견됐다. 복구 때 기단을 얼마만큼 살릴 지 고심했고 복구단은 30~50㎝ 정도만 기단을 내리기로 결정했다. "태조 때 건립 이후 조선 시대에 2번의 '의도적인' 복토가 있었습니다. 일제 때 묻힌 부분은 30~50cm정도더군요. 따라서 지반을 깎아 낮추는 것은 일제가 쌓은 부분 만큼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기단을 높인 데에는 마땅한 이유가 있었을 테고 그것은 우리가 인정해야 할 부분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조선 중ㆍ후기의 역사적 과정을 모두 지우게 되니까요. 따라서 우리는 역사성은 남기되 조선 말 일제 훼손 직전의 상태를 되찾고자 합니다. 고증을 통해 예전의 사실을 밝힌후 복구 원칙은 그 시대의 가치관에 입각해 선택하는 것인데 이 과정이 가장 어렵습니다." 육축(기단)도 1961년도 보고서에 따르면 일제가 해체해 콘크리트로 다시 쌓았다는 기록이 있다. 이 부분 역시 복원해야 할 부분이라 포크레인을 동원해 콘크리트를 긁어냈다. 숭례문 복구 과정에서 기와와 철 가공을 복원해낸 성과도 있다. 전통 기와 제작은 한국전쟁 이후 근대화와 함께 반세기 이상 맥이 끊겼다. 이를 제와장 김형근 씨가 복원해 내는데 성공했다. 지금껏 일본요인 달마요를 썼으나 조선요 발굴에 성공함에 따라 부여 소재 한국전통문화학교에 기와 가마 3기를 만들어 기와를 양산할 예정이다. 전통 기와는 대량생산과 달리 기와장에 묘한 생명력과 부드러운 깊이감이 감돈다. 일제가 쇠를 못 만들게 해 명맥이 사라졌던 전통 제련법도 되살렸다. 산업혁명 이전 방식의 목탄 제련법에 드는 비용은 포스코가 전액 후원했다. ◇올해 石木작업 마무리, 내년 완성 목표=전통적인 한옥 건물의 축조과정은 부재를 미리 다듬은 다음 조립을 통해 완성된다. 올해 업무의 핵심은 숭례문 현장의 돌쪼기와 경복궁에서의 나무 다듬기다. "석축과 나무 부재를 다듬는 작업을 마무리하고 올해 말까지 나무 조립을 마칠 예정입니다. 내년 봄 쯤에 기와를 올릴 거예요. 그 후 진행되는 단청 작업은 사람으로 치면 화장하는 과정이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패션의 완성인 넥타이를 매는 기분으로 현판을 걸면 마무리가 됩니다. 그런 다음 숭례문을 둘러싼 가설 덧집을 제거하면 국민 앞에 늠름한 모습을 드러내게 되겠지요. 저희를 믿고 끝까지 지켜봐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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