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안기부의 비밀도청팀인 미림의 팀장을 맡았던 공영운씨의 자술서에는 역대정권이 어떻게 정보기관의 권력을 유지하는 도구로 악용해왔는지가 그대로 담겨 있다.
특히 군사정권은 말할 것도 없어 민간출신 대통령으로 권력이 넘겨진 문민정부와 민주화를 기치로 내건 국민의 정부에서도 도청팀이 운영되고 정권에 불리한 테이프의 존재를 감추기 위해 야합에 가까운 거래가 있었다는 점까지 드러났다. 때문에 이번 X파일 사건으로 국가정보기관의 정치적 중립성은 더욱 강조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국정원의 자체조사와 검찰의 수사 착수에 이어 정치권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특검까지 거론되고 있어 정치공작의 실상이 알려지고 정치권은 또다시 격랑에 휘말릴 전망이다.
공씨의 자술서에서 밝힌 내용이 맞다고 볼 때 비밀도청 조직은 문민정부 훨씬 이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문민정부가 사실상 사라졌던 미림팀을 부활한 점은 권력자의 정부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더 악용된 것으로 보인다. 당시 비서실장 등 고위공직자들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중도하차했던 이유가 대통령의 아들에 대한 경계 때문이었다는 점도 테이프에 의해 밝혀졌다.
업무 때문에 취득한 비밀을 무덤까지 갖고 가야 하는 정보기관 퇴직자들이 비밀리에 테이프를 빼돌리고 사업에 이용하려 하는 등 공직자로서 기본적인 윤리의식까지 망각한 점도 미림팀을 정권 유지 차원에서 필요에 따라 만들고 없애며 악용했던 정권의 비도덕성과 크게 다르지 않다.
권력 유지 차원의 국가 사찰행위를 근절하겠다고 공언한 국민의 정부도 미림팀의 테이프 존재와 유출을 확인하고서는 법에 따라 대처하지 않고 이권까지 챙겨주며 입을 막으려 했던 점에서 정보기관을 원칙에 의거해 운영하기보다는 권력의 필요에 따라 그때그때 제멋대로 운영해왔다는 비난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불법 도감청에 대한 조사가 확대될 경우 지난 2002년 대선 과정에서 불거졌던 휴대폰 도청 논란까지 일어 또 다른 파문으로 번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