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설] 사고 터지면 조직부터 만드는 금융당국의 몰염치

금융위원회가 20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금융전산보안 전담기구를 설립하겠다고 밝혔다. 개인정보 유출사고 재발을 막기 위해서다. 금융결제원 등에 산재된 금융보안관제(ISAC)와 침해대응 기능을 떼어내 신설 조직으로 이관하고 보안전문 인력 양성처럼 민간이 수행하기 어려운 공적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구상이다.


외양간을 고치겠다는 금융당국의 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공공조직을 만들겠다는 발상은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금융위의 방침을 뒤집어본다면 전담기구가 없어 이번처럼 초유의 개인정보 유출사고가 났다는 핑계로 들리기도 한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이 지난달 사고수습과 관련한 기자회견에서 한 말을 금융당국은 기억할 필요가 있다. 신 위원장은 "기본적인 보안절차만 지키면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인재였다"고 했다. 허술한 보안의식이 문제였다는 지적에 백번이라도 공감한다. 그렇다면 감독 시스템을 재정비하고 허술한 법 체계를 잘 갖추면 될 일이지 굳이 관치조직을 신설해야 하는지 의문이다. 백번 양보해 그런 조직이 반드시 필요하다면 민간 자율기구가 아닌 공공조직으로 설치해야 할 이유는 또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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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세로 운영되는 공공조직의 신설은 대단히 신중하게 결정돼야 한다. 사고 터지고 뒷북 대응하느라 혼선을 가중시킨 것도 모자라 전담기구부터 만들겠다는 시도는 국민에게 염치없는 짓이다. 국정 핵심 과제인 공공기관 정상화에도 좋지 않은 신호다. 공공 부문 비대화를 초래하고 옥상옥이 될 소지도 크다. 금융위가 업무보고에서 공공조직을 신설하려는 게 보안기구만은 아니다. 해운보증기관과 서민금융총괄기관도 만들겠다고 했다. 명분을 들이대자면 못 만들 조직이 없다.

이런저런 사고가 터지면 조직확대에 나서는 행태는 공공 부문의 고질병이다. 인력과 조직 부족을 탓하고 예산 타령을 하는 당국의 안이한 태도를 우리는 수없이 봐왔다. 금융위는 기구신설과 조직확대에 앞서 가용자원을 최적화할 방안을 강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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