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금호생명 트라우마'… 구조조정안 만들기 전에 회사 쓰러질판

■ STX조선 4000억 긴급지원 요청<br>홍기택 회장 "손실 보전·면책 보장해달라"<br>산은 등 채권단 적극 지원 대신 버티기

STX의 구조조정이 지지부진해지면서 홍기택 산은 회장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서울경제DB


STX그룹 구조조정에 적극 나설 것으로 예상됐던 산업은행의 모습이 요즘 들어 보이질 않는다. 긴급 지원 요청에 나서는 STX에 대해 산은이 버티는 모양새다. 금융권에서는 산은이 이처럼 태도를 바꾼 배경으로 과거 금호생명 인수과정에서 벌어진 '트라우마'를 꼽는다.

산업은행은 지난 2009년 금호아시아나그룹 구조조정 때 주채권은행이었다. 산은은 당시 금호산업 구조조정안을 발표하기 바로 직전 사모펀드를 구성해 금호생명(현KDB생명)을 인수하겠다는 내용을 포함시켰다. 당초 산은 실무진이 작성한 구조조정 방안에는 없던 내용이었으나 당국의 막판 개입으로 들어간 것이었다.


금융권의 한 고위 관계자는 "당시 정부가 금호산업을 살리기 위해서는 산은이 금호생명을 인수해야 한다고 지시해 인수를 추진한 것인데 나중에 감사원 감사에서 비싸게 인수했다고 지적을 받았다"면서 "산은 입장에서는 STX지원과 관련해서도 당시의 트라우마가 떠오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감사원은 지난 2011년 금호생명 인수로 산은이 2,589억원의 손실 발생이 우려된다며 담당자 징계를 요구했다. 감사원은 산은이 2009년 금호생명을 인수할 당시 실제가치보다 높게 평가했다고 봤다. 산은은 2009년 12월 주당 5,000원씩 총 4,800억원을 투자해 금호생명 경영권을 인수하기로 계약을 체결했다. 이는 부실자산이 578억원에 그친다는 전제 아래 체결된 가격이었다. 하지만 감사원은 주식인수를 위한 검토과정에서 1,836억원의 부실자산이 추가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파악하고도 기업인수를 위한 재무실사를 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순자산가치 기준으로 최대 2,589억원의 손실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결론 내렸다.


이어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부도 전∙현직 산은 임직원들을 소환해 조사했다. 산은의 한 관계자는 "당시 해당 임직원들이 한 달 넘게 검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았다"면서 "어려움에 처한 기업을 살려놨더니 당시 상황은 고려하지 않고 책임을 추궁하니 어느 누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일할 수 있겠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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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택 회장이 최근 STX그룹 채권단이 구조조정 결과로 떠안을 손실에 대한 보전이나 면책 보장을 당국에 비공식적으로 요구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대규모 손실을 떠안을 가능성이 매우 큰 STX그룹 지원에 나서려면 나중에 이를 문제 삼지 않겠다는 약속이 선행돼야 한다는 인식으로 읽힌다. 채권단이 올해 STX그룹과 관련해 쏟아 부어야 할 돈은 신규 운영자금, 충당금 적립, 만기 도래 회사채 지원 등으로 3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홍 회장은 최근 일부 산은 임직원에게도 이런 점을 언급하면서 "STX 때문에 힘들다"고 고민을 토로한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권의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국가 경제위기'를 이유로 등을 떠미는 게 사실"이라며 "그럼 나중에 '접시가 깨졌다'고 벌은 주지 말아야 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STX의 상황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지원에도 불구하고 자금사정이 좋지 않은 것인데 STX조선해양은 채권단에 다시 한 번 SOS를 쳤다. 지난 4월 자율협약을 맺으면서 6,000억원의 자금을 지원 받은지 한 달여 만이다. 채권단의 강도 높은 실사가 진행 중임에도 긴급지원을 요청해야 할 만큼 STX조선의 회사사정은 악화일로로 접어들고 있다. 산은 관계자는 "적극적으로 자금지원 등을 해야 STX가 회생할 수 있다"면서 "실무자들을 위한 안전장치가 마련돼야 지원도 힘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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