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외무성의 20일 담화는 ‘핵포기’와 ‘경수로 제공’을 놓고 북한ㆍ미국간 줄다리기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 격이다. 이에 따라 향후 협상과정에서 어떤 식으로 합의가 도출될지, 이 과정에서 우리 정부가 어떤 역할을 할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경수로 제공 시점에 관한 논란은 공동성명이 발표될 때부터 예고된 것이었다. 공동성명에 나온 ‘적절한 시기에 경수로 제공 문제를 논의한다’는 표현은 경수로 제공 시점에 관한 어떤 합의도 이뤄지지 않았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해석의 범위가 넒은 만큼 입장차가 클 수밖에 없다.
북한은 외무성 대변인 담화에서 “미국이 우리에게 신뢰조성의 기초로 되는 경수로를 제공하는 즉시 핵무기비확산조약(NPT)에 복귀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담보협정을 체결하고 이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은 북한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경수로 제공 시점은 북한이 NPT에 복귀하고 IAEA 안전조치를 이행한 후”라며 “논의의 순서가 이렇게 돼 있는 것은 다른 나라들도 분명히 했다”고 강조했다.
양측이 이처럼 대척점에 서 있기 때문에 우리 정부의 어깨가 무거워지고 있다. 모두가 수용할 수 있는 대안을 내놓고 설득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규형 외교통상부 대변인은 이날 “이 문제는 향후 6자 협의를 통해 논의, 결정될 것”이라며 “각국은 내용 해석상 자신이 요구하는 최대치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향후 협상과정을 통해 양측의 ‘최대치’를 수렴한 ‘중간치’가 도출돼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 것이다.
우리측이 마련하고 있는 절충안은 ‘선 핵포기ㆍ후 경수로 착수’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즉 정부는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NPT 복귀 및 IAEA의 제반 안전조치를 이행하면 경수로 설계 및 사업착수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이는 북한의 핵포기 후 경수로 제공 논의를 시작한다는 미국과 경수로를 제공하는 즉시 핵을 포기하겠다는 북한이 모두 한발씩 양보해야 도달할 수 있는 ‘중간지점’이라고 볼 수 있다.
한편 경수로 문제와 관련, 연간 200만kW의 전력을 공급하기로 한 대북 중대제안은 수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이날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7월12일 처음 얘기했던 중대제안이 무기한 송전계획이었다면 앞으로는 기한 내 송전계획으로 바뀔 수 있다”며 “경수로가 완공돼 전기가 공급되면 그때는 200만kW는 제공할 필요가 없게 된다”고 밝혔다. 경수로 건설에 우리측 재원이 일정 부분 투입될 것이기 때문에 중대제안까지 병행해 이중부담을 지지는 않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