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특별인터뷰] 랜들 크로즈너 시카고대 경영대학원 교수(前FRB 이사)

"한국, 경기호전 조짐땐 금리 선제적으로 인상해야" <br>출구전략, 나라별 상황에 맞춰 시행을 美는 지금이 재할인율 미세조정 타이밍<br>중앙은행 금융시장 전반 감독권 필요 韓銀 독립성 지금보다 더 강화해야


지난해 1월 3년간의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이사 임기를 마친 랜들 크로즈너(47ㆍ사진) 미국 시카고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25일 "경기가 좋아지는 기미가 보이거나 기대 인플레이션이 올라가는 조짐이 나타날 경우 한국은 국제공조에 앞서 선제적으로 기준금리를 인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크로즈너 교수는 그러면서 "금융규제는 그 자체가 목적이 돼서는 안 되고 경제성장과 발전이라는 목적에 걸맞게 조율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올 봄 학기부터 1년간 연세대 경제학과 SK석좌교수로 초빙돼 국내에서도 활동하고 있는 크로즈너 교수는 이날 서울경제신문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최근 한국은행 총재 교체 과정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며 "한국은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지금보다는 조금 중요하게 세워져야 할 것 같다"고 의견을 피력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 과정에서 FRB 이사로 사상 유례없는 공직을 거친 크로즈너 교수는 인터뷰에서 최근 FRB의 재할인율 인상 문제부터 한국은행의 독립성 문제까지 자유롭고도 명쾌하게 입장을 밝혔다. -FRB가 3월에도 기준금리를 동결하면서 '상당 기간 초저금리를 유지한다'는 팽창적 금리정책 기조를 지속했습니다. 그러나 지난 2월에는 재할인율을 0.5%에서 0.75%로 전격 인상하면서 출구전략(exit strategy)을 서서히 시도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있습니다. ▦기술적인 변화(technical change)로 이해해야 합니다. FRB가 재할인율을 올린 것은 시장에 실제적으로 영향을 미치려고 하기보다 출구전략을 생각하고 있다는 시그널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FRB가 초과지급준비 이자율(IOER)을 실질적으로 0%까지 낮춘 것을 기억하실 겁니다. 지금은 기준금리를 전격적으로 인상하기보다는 상황을 봐가며 초과지준 이자율이나 재할인율에 대한 미세 조정 타이밍입니다. 당분간 FRB의 전략은 이 같은 모습으로 나가지 않을까 예측됩니다. -금융위기 이후 전세계가 확장적 재정ㆍ통화정책에는 쉽게 공조를 이룬 반면 출구전략에 있어서는 좀처럼 공조를 보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부 국가들이 이미 기준금리를 인상하는 등 국가마다 제각각입니다. 과연 출구전략 공조가 이뤄지는 게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위기는 전세계에 일시적으로 왔지만 그 이후 전개 과정은 나라마다 다릅니다. 한국처럼 위기에서 빨리 탈출한 나라가 있는 반면 여전히 상황이 좋지 않은 국가도 있습니다. 위기가 찾아온 시기는 비슷하지만 위기가 전개된 국면은 분명 나라마다 다르게 나타났고 그에 대한 회복 역시 국가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몇몇 나라는 이미 인플레이션 압력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일시적으로 출구전략에 돌입하는 것보다는 국가마다 상황에 맞춰 조치를 취하는 것이 현실적일 것입니다. -FRB의 기준금리 인상 시기는 언제쯤으로 예상하십니까. ▦구체적인 시기를 언급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다만 최근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발표한 성명들을 보면 단초를 엿볼 수 있습니다. 여유자원(resource slack)과 인플레이션 흐름, 기대 인플레이션 등이 중요한 요소입니다. 앞으로의 경제 상황에 따른 거시지표 변화를 눈여겨봐야 할 것 같습니다. -한국의 상황은 어떻게 보십니까. 기획재정부를 비롯한 행정부 당국자들은 출구전략의 제1조건으로 국제공조를 꼽고 있습니다. ▦다소 일반론적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출구전략은 산업생산지표와 고용률ㆍ인플레이션 압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합니다. 한국의 경우에도 기대 인플레이션이 올라간다거나 경기가 좋아지는 기미가 보이면 국제공조에 앞서 선제적으로 기준금리를 인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건강보험 개혁안 통과를 계기로 자신만의 개혁 정책을 더욱 강력하게 밀어붙일 것이라는 예측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다만 오바마 대통령의 경기부양 의지가 앞으로 미국의 재정적자를 더욱 키울 것이라는 부정적인 견해도 있는 게 사실입니다. ▦사실 미국 행정부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발표한 재정지출이 미국 경제를 안정시키는 데 큰 효과가 있지는 않았습니다. 기술적으로 볼 때 금융위기 때 나왔던 재정정책들은 대부분 지난해에는 거의 안 쓰였고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쓰이기 때문입니다. 재정적자 문제에 있어서 절대 규모 자체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빚의 규모가 늘어나도 그에 비례해 국내총생산(GDP)이 늘어나면 되니까요. 다만 미국에 있어서 재정적자의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일각에서는 지금보다 10년 이상 흐르면 재정적자가 줄어들 수도 있다고 보지만 예상대로 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건강보험 문제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봅니다. -중국 위안화 절상을 둘러싸고 미국과 중국 간의 신경전이 뜨겁습니다. 위안화 문제가 정치문제로까지 번지면서 미국 내에서도 전문가들 간 의견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중국은 단기간에 환율정책을 바꾸지 않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중국에 대한 미국 정부의 태도입니다. 폴 크루그먼 교수는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하고 수입품에 과징금을 부과하는 강경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저는 이 같은 의견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 보호무역으로 돌아가는 꼴이 되고 맙니다. 위안화 절상은 경제문제입니다. 그 자체를 두고 좋고 나쁨을 정의할 수는 없습니다. 미국 내에서도 생산자와 소비자 간, 또 생산자들 간에도 산업별로 이해관계가 다릅니다. 위안화 문제는 결국 시장에 맡겨야 합니다. 정부가 특정 방향의 조치를 강제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교수님은 FRB 이사 시절, 금융위기 이후 규제의 틀을 새로 짜는 데 깊이 관여하셨습니다. 버냉키 FRB 의장은 대마불사(too big to fail)는 없다며 새로운 법 제정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투자은행(IB)의 과다한 투자를 막는 '볼커 룰'도 제정되면서 규제가 현실화되는 모습을 보이는데요. ▦금융규제의 목적을 다시 생각해봅시다. 규제의 목적은 은행을 망하게 하는 게 아니라 경제성장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너무 강한 규제를 가할 경우 금융사를 위축시키고 경제성장에도 방해가 됩니다. 규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과 잃을 수 있는 것의 밸런스를 맞출 필요성이 있습니다. 테러를 생각해볼까요. 테러를 완벽히 막기 위해서는 그만큼 통제를 강하게 하면 됩니다. 공항의 하나하나를 검사하고 자원을 쏟아부으면 됩니다. 하지만 테러를 막는 것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일이겠지요. 금융도 마찬가지입니다. 은행을 망하게 하지 않으려면 자기자본비율을 100%로 올리면 간단합니다. 그러나 그게 효과적인 규제일까요. 금융규제의 목적이 단 하나의 금융기관도 망하면 안 된다 쪽으로 가면 곤란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볼커 룰은 많은 부분이 부족한 게 사실입니다. 금융규제가 어려운 이유는 규제를 만들어도 금융사들이 항상 이를 회피하는 다른 수단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규제를 실행한다고 해도 자기자본거래의 규정이나 정의 자체가 미국 내에서도 여전히 모호한 게 사실입니다. 결국 금융규제는 금융사와 소비자 간의 상호 연관되는 부분을 어떻게 잘 관리하느냐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최근 한국은행 총재 인선을 두고 한바탕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이른바 '매파' 총재가 물러난 자리에 정부와의 협조를 강조하는 '비둘기파' 총재가 새로 임명됐습니다. 중앙은행의 독립성 문제가 새삼스럽게 불거지고 있는데요. ▦최근 한국 상황을 흥미롭게 보고 있습니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은 매우 중요합니다. 다만 한국과 미국은 중앙은행의 역할이 다릅니다. 미 FRB의 양대 권한(Dual mandate)은 고용 촉진과 물가안정입니다. 물가안정만을 목표로 하는 한국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금융시장 감독권 문제는 보다 예민하게 봐야 합니다. 중앙은행은 반드시 금융시장 전반에 대한 감독권한을 가져야 합니다. 한국에서 이를 둘러싼 논쟁이 벌어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느 한 곳만이 감독권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기준금리 인상을 두고 재정부 등 정부 당국자들이 '지금은 (금리인상에 나설) 때가 아니다'라고 공개석상에 언급을 하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미국이라고 정부가 통화정책에 대해 손을 놓고 있지는 않습니다(웃음). 얘기를 하더라도 (한국처럼) 직접적으로 언급하기보다는 기술적으로 돌려 이야기하겠지요. 조금은 세련된 표현이 필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금융위기 통화정책 분야 세계적 석학

■ 랜들 크로즈너는 누구 랜들 크로즈너(Randall S Kroszner) 미국 시카고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미국 브라운대와 하버드대에서 통화정책을 전공한 금융위기 통화정책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이다. 지난 2001~2003년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으로 일하며 관계와 인연을 맺었다. CEA 시절 월가의 대규모 회계부정 스캔들 폭풍 속에서 미 행정부 경제정책의 틀을 짜고 입안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맡았다. CEA 위원 임기를 마친 후 시카고대 경영대학원 교수로 복귀했다가 2006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이사를 맡으며 사상 유례없는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 밴 버냉키 FRB 의장 등과 함께 미국 통화정책을 이끌어왔다. 친공화당 보수성향 인수로 분류되는 크로즈너 전 이사는 FRB 재직 시절 금융위기 재발 방지를 위한 금융규제에 대해 "규제를 위한 규제가 될 수 있다"며 반대 의사를 밝혀 주목을 받기도 했다. 올 1월 말 FRB 이사직을 사양한 크로즈너 교수는 시카고대로 돌아오면서 연세대 경제학과 SK석좌교수직도 함께 맡았다. 두 학교에서 모두 화폐금융론 수업을 맡으며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당시의 미국의 경제상황과 금융위기 출구전략에 대해 '실전 경험'을 바탕으로 강의하고 있다. 인터뷰를 마치며 크로즈너 교수는 "어머니가 워낙 신문 인터뷰를 좋아해 이번 인터뷰도 기사가 나면 꼭 스크랩해 미국에 보내겠다"며 미국인답지 않은(?) 효심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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