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설] 경희대와 학생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호프집 생맥주잔의 용량이 주문보다 최대 23% 적게 나온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한국소비자원이 서울시내 90개 맥주판매업소를 조사한 결과 2,000㏄와 3,000㏄짜리 피처잔의 실제 양은 각각 1,700㏄와 2,700㏄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소비자원이 이 같은 사실을 밝혀낸 지난해 말보다 이른 시점인 12월 초에 서울시청은 맥주잔의 실제용량을 상단부나 중앙에 표시하도록 맥주회사에 요청했다. 각 구청에는 '호프집들이 정량을 제공하거나 가격을 내리도록 유도하라'는 공문을 뿌렸다.


마치 미래를 읽는 듯한 서울시 행정의 배경에는 대학생들의 시민제안이 있었다. 경희대 후마니스타칼리지의 '시민교육'을 수강하는 학생들이 지난해 2학기 중 수업의 일환으로 맥주잔의 진실을 파헤쳐 서울시와 해당구청에 시정해달라는 민원을 넣었던 것이다. 서울시의 조치가 제대로 이뤄진다면 시민들은 대학생들 덕분에 보다 적은 부담으로 맥주를 즐길 수 있게 될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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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조치를 이끌어낸 대학생들의 얘기는 맥주 몇십~몇백㏄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지대한 의미를 갖고 있다. 무엇보다 현실사회에 관심을 갖고 해결책을 모색했으며 개선을 요구했다는 점이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미래의 주역인 젊은 학생들이 이 정도라면 우리나라의 장래도 밝을 것이라 확신한다.

의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학생들이 진실을 규명할 대상을 '용량'으로 정한 것도 칭찬해주고 싶다. 정확한 용량, 즉 도량형은 신용경제를 유지할 수 있는 주축이기 때문이다. 맥주잔의 용량을 속였다는 것은 작은 단위의 위조화폐 주조와 마찬가지로 중차대한 범죄행위에 해당된다. 과거 유럽에서는 금화와 은화의 가장자리를 도려내는 행위를 사형에 처할 만큼 엄중하게 다스렸다. 학생들의 노력으로 사회를 구성하는 중요축의 하나인 신용경제가 더욱 튼튼해지리라 믿는다.

취업을 위한 스펙이 중시되는 풍토에서 지난해부터 인문학 과정을 크게 늘린 경희대의 결단도 평가 받아 마땅하다. 작고한 스티브 잡스는 '아이폰은 기술로 만들지 않았다.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만들었다'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인간과 사회에 대한 관심을 교육과정으로 편성한 경희대와 교과를 훌륭하게 소화하며 사회에 기여한 학생들에게 박수갈채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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