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전문가 키우는 인사정책을/박태호 서울대 국제지역원 교수(시론)

21세기초 선진국 진입을 계획하던 우리나라가 상상을 초월하는 위기에 봉착해 있다. 이에 일반 국민들은 예상치 못했던 충격으로 멍한 정신을 가다듬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물론 재정경제원과 중앙은행 간부들도 지난 수주 동안에 일어난 일들이 꿈만 같이 느껴질 것이다.국내외 언론들은 눈부신 경제성장의 기적을 이루어낸 한국이 좌초하고 있음을 경쟁이나 하듯이 보도하고 있다. 특히 국내에는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금융지원을 받게된 것은 경제주권을 빼앗긴 것과 마찬가지라는 비관적인 정서가 팽배해 있다. 또한 대선을 앞둔 정치권은 금번 경제위기를 놓고 책임론 공방에 열을 올리고 있으며 재벌, 금융기관, 정부 등 경제주체들은 상대방에게 잘못의 책임을 떠넘기기에 급급해 하고 있다. 물론 일각에서는 이번 일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또한 과거에 우리 부모와 선배들이 해냈듯이 다시 허리띠를 졸라매고 다함께 땀을 흘리자는 시민운동이 자발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라 하겠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시민운동만으로는 금번 위기를 극복하고 나아가 우리나라를 선진국으로 만드는 데에 결코 충분치 않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우리가 처해 있는 국내외 경제여건이 과거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말 홍콩의 한 미국계 금융기관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가 전화를 걸어왔다. 몇 주일 안가서 금융위기로 한국경제가 파산할 것으로 보이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라고 물어와 말도 안되는 소리하지 말라고 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 친구의 말이 불과 며칠만에 사실로 드러나고 말았다. 이렇게 외국의 금융기관은 우리의 앞을 내다보고 있는데 우리 정부와 금융당국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고 화가 치밀었지만 금세 마음을 가라앉혔다. 우리 정부와 금융당국에는 세계 금융시장이 어떻게 돌아가고 우리 기업과 금융기관의 외채구조가 무슨 문제를 야기시킬 것인지를 일관성있게 분석하는 전문가가 없기 때문이라는 대답을 쉽게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급속하게 통합돼 가는 세계금융시장과 연계, 발생하는 매우 기술적이고 전문적인 사태를 시민운동으로 대처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 주변을 보면 전문가의 의견이 존중받고 정책으로 반영되는 풍토가 조성되어 있지 않다. 다만 외부전문가의 부정적인 비판에는 자기방어와 책임회피에 신경을 곤두세우지만 미래지향적인 제안이나 조언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보다 심각한 문제는 정부내부에 전문가들이 키워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전문성보다는 학연·지연·연공서열에 치우친 우리의 인사제도가 가져다 준 결과인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우리 사회 전반에 펼쳐지다 보니 시간이 지나면서 각 분야에 전문성이 축적되지 못하고 임기응변의 기술만 늘 뿐이다. IMF 금융지원이후 우리의 경제 상황은 매우 어렵게 전개될 것이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해야 할 일들은 수없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여기서 한 가지를 특히 강조하고 싶다. 그것은 다름 아닌 정부를 비롯한 우리 사회의 각 분야에 전문가를 앉혀 일하게 하는 인사제도부터 확립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필자는 차기 대통령 당선자에게 선거직후 인사자문위원회의 설치를 제안하고 싶다. 동 기구를 통해 전문성이 돋보이고 국민에게 신뢰감을 줄 수 있는 인물을 찾아 새 내각을 구성할 것을 주문하는 바이다. 중하위 공직자의 승진과 보직배정에도 마찬가지 인사원칙이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인사원칙이 자리잡힐 때 공직자 사회에도 전문성과 생산성을 바탕으로 한 경쟁이 이루어질 것이다. 과거 정부주도의 경제발전기간에는 모든 분야에 대한 경험과 지식을 두루 갖춘 소위 만능선수가 각광받았으나 이제는 국제감각과 전문지식을 겸비한 전문인력이 능력을 발휘하는 시대가 왔다. 이번 금융위기로부터 우리가 배운 가장 고귀한 교훈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계경제여건에 과감하고 능동적으로 적응하지 못하면 결국에는 파국을 맞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세계경제의 변화가 가져다주는 영향을 무조건 차단하는 것이 우리를 위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하겠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경제를 세계경제에 통합시키고 그 속에서 거시경제의 안정이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고도의 세련된 정책수단을 마련하는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정책담당자들의 전문성 제고가 시급히 요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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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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