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김재영의 남성학] 해외 매춘관광

법망 피하려다 큰코 다칠수도

‘오랑캐 처녀들의 꽃다운 얼굴/술을 팔며 봄바람을 비웃는다/봄바람을 비웃으며 비단 치마입고 춤추네/그대는 취하지 않았는데 어찌 돌아가려 하는가.’ 이백이 쓴 시로 당시 중국 문인들의 사랑을 받았던 ‘호희’라는 서역 기생들을 묘사한 작품이다. 중국은 영토확장과 교역으로 페르시아나 인도 출신의 여인들이 흘러 들어와 술과 웃음을 팔았으니, 이들이 있는 술집을 주가호(酒家胡)라고 불렀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은 새로운 것에 호기심을 갖기 마련이고, 이국 여인에게는 신비함과 더불어 색다른 욕구를 받는다. 해서 호희들은 남성들에게 인기가 높았는데 성적으로도 대담한 기교를 발휘해 중국 기녀들과 차이점을 보였다고 한다. 이와 비근한 예가 우리나라 강계 미인이다. 남남북녀라 해서 북쪽의 여성을 높게 쳐주지만 그 중에서도 강계 여성은 미인의 상징이었으니 북방지역 특성상 이른바 혼혈이 많았다. 즉, 강계 미인들은 오똑한 콧날과 검은 피부, 훤칠한 몸매를 타고났기에 이국적인 멋이 있었으니, 평양 진주와 더불어 조선시대 대표적인 기생의 배출지였다. 한편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외국인 접대부가 등장한 것은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의주와 같은 국경 도시로 흘러 들어 온 중국 기생이었다. 그러다가 개화기 유대인 여인들이 서울에 들어와 매춘 영업을 벌였는데, 지나가는 행인들을 ‘컴인, 컴인’하고 불러, 감인(甘人)으로 불렸다. 이후 제정러시아가 멸망하면서 러시아 여인들이 대거 입국, 종로에 집단으로 거주하며 일부는 약이나 화장품을 팔고 일부는 몸을 팔았으니 유명한 종삼(종로 3가) 집창촌의 개척자들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러시아 여성들의 매매춘은 그 역사가 상당히 깊다. 개화기 때는 나라 잃은 처지였고 오늘날에는 경제적 문제 때문이니 국력은 여성의 정조를 가늠하는 잣대라고 할 수 있다. 아무튼 개화기에도 미끈한 러시아 매춘부들의 인기가 높았다고 하는데 백마(?)를 타려는 이색 취향의 손님이 많아 화대도 무척 고가였다고 한다. 하지만 외국인 매춘부들은 제대로 관리를 받지 않아 성병 감염자가 많았기에 개화기 병원을 출입하는 남성 환자의 50%가 성병환자라는 부작용을 낳는 촉매제가 되었다. 세계화 시대를 맞아 과거의 예를 온고지신으로 삼아야 할 것인데, 그런 점에서 걱정되는 것이 있으니, 성매매특별법 시행이후 외도를 위해 해외로 매춘관광을 떠나는 남성들이 생겨났다는 보도다. 법적 규제가 유명무실한 동남아로 매춘여행을 떠난다고 하는데, 자칫 성욕을 해소하려다 큰일을 당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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