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12월 23일] 공공기관의 S/W산업 죽이기
성장기업부 서동철기자 sdchaos@sed.co.kr
병원에 의료용 소프트웨어를 제공하는 국내 중소 정보기술(IT)업체들은 요즘 비상이 걸렸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이 최근 간담회를 열어 업계에서 줄곧 공급해왔던 프로그램을 자체적으로 개발해 전국 요양기관에 무료로 공급하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기 때문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것은 전국 병ㆍ의원의 보험료 청구 오류여부를 점검하는 전산 프로그램이다. 심평원은 요양기관의 정확한 보험료 심사 청구를 유도하기 위해 이 같은 프로그램을 자체적으로 개발해 요양기관에 무료로 제공하고 심사청구 이전에 청구오류를 최소화하도록 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내년 1ㆍ4분기부터 관련 프로그램을 개발해 테스트를 거친 후 4ㆍ4분기부터 본격적으로 프로그램을 공급하겠다는 일정까지 제시한 상태다.
물론 요양기관들의 올바른 보험청구를 유도하고 이를 위해 관련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겠다는 심평원의 프로그램 개발 취지야 십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미 관련 프로그램이 민간업체에 의해 개발돼 시장에 공급되고 있는 상황에서 일선업체를 철저하게 배제한 채 예산까지 들여 유사 프로그램을 만들겠다고 나선 것은 논란을 빚을 수밖에 없다.
업계에서는 정당한 입찰을 통해 민간 부문에서 개발된 프로그램을 채택하고 원하는 사양에 맞춰 조정하면 되는데도 굳이 인력도 충분히 갖추지 않은 상황에서 많으면 수십억원의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는 방식을 동원하는지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다.
특히 입찰참여 기회조차 주지 않고 일방적으로 무료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공급하면 관련 업체들은 사실상 고사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세심한 정책적 배려가 아쉽다.
사실 현 정부 들어 국내 소프트웨어산업은 정책의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하면서 전반적으로 위기에 처해 있다. 한때 코스닥의 대표주자였던 소프트웨어 업종의 경우 지난 3ㆍ4분기에만 모두 100억원에 가까운 적자를 기록했을 정도다.
특히 공공기관의 소프트웨어 개발을 주력으로 했던 일부 업체들의 경우 현 정부 들어 관련 예산 집행이 늦춰지거나 삭감되면서 직원들에게 월급도 주지 못하는 등 벼랑 끝에 내몰리고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올해 IT산업의 경쟁지수 순위에서 한국은 지난해보다 5단계 떨어진 8위에 머물렀다고 한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지속되면 소프트웨어 업체들은 설 자리를 잃게 돼 ‘대한민국=IT강국’이라는 등식은 더 이상 성립되기 어려울 것이다. IT강국의 위상을 유지하고 중소기업인 소프트웨어 업체들을 살릴 수 있도록 정부와 공공기관의 정책적 배려가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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