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 3월 15일] <1644> 뉴버그 위기


신생 미국에 위기가 닥쳤다. 군과 의회가 맞섰다. 전투는 종결되고 협상만 남은 1783년 초에 발생한 분란의 이유는 돈. 전황이 화평 국면으로 들어서며 참아왔던 불만이 고개를 들었다. 결정적으로 대륙회의 시절 약속했던 급여 절반의 연금식 지급방안을 통합의회가 지키지 않을 것이라는 소문에 대륙군(미국 독립군)이 술렁거렸다. 군부와 의회의 협상이 결렬되자 사태는 파국으로 치달았다. 군대에서 '의회로 쳐들어가자'는 주장이 나오고 강경파 의원들은 '대륙군을 반란군으로 규정하겠다'고 맞섰다. 대륙군 총사령관 조지 워싱턴은 아연실색했다. 병사들이 반기를 든 적은 이전에도 있었지만 엘리트 장교단의 집단행동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1783년 3월15일, 군부가 쿠데타를 논의하기 위해 뉴버그의 대형 천막에 모였을 때 극적인 반전이 일어났다. 예고 없이 찾아온 워싱턴의 설득에도 반응하지 않던 장교들이 눈물을 흘리며 쿠데타를 포기했다.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워싱턴은 연설 막바지에 처우개선을 약속하는 의원의 편지를 꺼내 들며 양해를 구했다. '안경을 쓰는 것을 이해해달라. 조국을 위해 싸우는 동안 머리는 백발이 되고 눈은 장님이 될 정도로 침침해졌다.' 총사령관이 안경을 쓴 모습을 처음 본 군인들은 속으로 흐느끼며 쿠데타 계획을 접었다. 제임스 매디슨은 이 소식을 듣고 일기에 '내전의 먹구름이 사라졌다'고 적었다. 워싱턴의 호소가 없었다면 미국은 쿠데타가 반복되는 국가가 됐을지도 모른다. 워싱턴은 왕좌에 오르라는 제의마저 일축하며 번영의 토대를 쌓았다. 집권을 위해 친일파를 중용하고 전쟁의 와중에도 군대를 동원해 헌법을 뜯어고친 어느 초대 대통령과는 달라도 한참 다르다. 미국인들이 워싱턴을 국부(國父)로 존경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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