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9월 10일] 이솝우화와 강한 특허

이솝우화에 ‘꾀부리는 당나귀 이야기’가 있다. 한 당나귀가 소금을 지고 개울을 건너다 그만 미끄러져 소금이 물에 녹아 짐이 가벼워졌다. 다음날 이 당나귀는 솜을 지고 가다 얕은 생각에 일부러 또 넘어졌다. 그러나 물먹은 솜 때문에 당나귀는 몇 배나 더 고생했다는 이야기다. 우리 과학기술계도 지금 이솝우화의 당나귀처럼 행동했던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 신문 보도를 통해 지난 2006년 우리나라는 세계 4위의 특허출원 대국이였지만 기술무역수지는 25억달러 적자로 적자 규모 세계 5위라는 불명예스러운 통계를 접했다.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연구를 하고 있는 필자로서는 마음이 편하지 않는 기사였다. 이 결과에 대학은 책임이 없는가, 대학은 마냥 상아탑으로만 남아 있어도 되는 것인가, 대학의 연구결과가 대한민국의 국부에 얼마나 도움이 되고 있는가, 자문해봤다. 특허 정책을 추진하는 특허청은 그동안 특허출원에서 심사까지 일률적으로 10개월 이내에 처리한다는 목표를 세워 2006년 말부터 세계에서 가장 빠른 특허 심사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미국이나 일본의 20개월 안팎에 비해 10개월여나 빠른 획기적인 기간 단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여기에 발맞춰 기업체나 대학들도 하나의 발명을 여러 개로 나눠 출원하는 양적 출원으로 화답했으며 빠른 심사서비스에 도취됐다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이제 세계 지식재산권 질서는 미국ㆍ일본ㆍ유럽연합이 주도하던 3극(極) 중심 체제에서 우리나라와 중국을 포함하는 5극 체제로 전환되고 있다. 이들 특허 선진국, 특허출원 대국들은 특허 심사를 기다리는 적체가 심해지면서 선진국 간 심사결과의 상호활용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또 우리나라의 경우 국제특허출원(PCT)에 따른 국제조사 의뢰건수가 급증하면서 세계가 우리의 특허심사의 질에 주목하고 있다. 이런 현실 여건에서 일률적으로 빠른 특허심사를 제공하려면 특허청 심사관은 과도한 물량을 처리해야 하며 이것이 심사 질의 저하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마치 소금을 졌던 당나귀가 가벼움에 도취돼 물먹은 솜을 짊어지고 허덕이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대학과 기업들도 빠른 등록으로 인한 특허관리비용의 증가 및 부실권리와 이에 따른 불필요한 소송비용의 증가 등이 가중되면서 빠른 심사가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라는 자각과 함께 고객의 요구도 다양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특허청이 국제환경의 변화와 고객의 목소리를 반영해 ‘고객이 원하는 시기에 고품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며 특허 정책의 패러다임을 전환하기로 한 것에 안도와 환영을 보낸다. 특허청 발표에 따르면 선진국형 심사품질 지표를 설정하고 선행기술조사와 기술분류 체계 개선, 심사인력의 역량강화를 통한 고품질 심사를 제공하고 고객이 원할 때 심사결과를 받아볼 수 있도록 하는 맞춤형 심사 기간을 제공하겠다고 한다. 이제 특허청의 심사 패러다임의 변화와 더불어 우리 대학의 특허경영관리전략의 변화도 요구되며 이러한 변화들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때 강한 특허의 창출과 부의 축적을 통한 연구개발의 선순환고리로 연결될 것이다. 필자와 제자들의 연구 결과가 강한 특허로 열매 맺고 다른 연구에 인용돼 더 많은 부를 창출하는 원천이 돼야 한다. ‘출원 대국’보다는 ‘특허 수지 흑자국’이라는 말을 듣고 싶고, 일조하고 싶다. 이솝우화의 당나귀와 같은 근시안적이며 꾀를 피우는 특허 전략에서 벗어나 조금 늦더라도 실용적이며 내실 있는 특허전략을 통한 선진일류국가 구현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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