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끼니도 거른채 ‘달러구하기’ 동분서주/종합상사 외환담당자의 하루

◎주거래은행찾아 환어음 결제통사정/100만불 확보하는데 하루종일 소비/“매일 살얼음판 걷는기분” 한숨만B상사 국제금융팀에 근무하는 K과장은 요즘 새벽에 집을 나와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퇴근한다. 출근과 동시에 커피한잔을 자판기에서 뽑아들고 컴퓨터 앞에 앉는다. 지난밤 영업부서와 해외지점들이 필요하다고 요구한 달러수요가 모니터속에 가득하다. 처리할일이 산더미 같이 쌓여 있다. 불과 1주일전과는 판이하게 다른 모습이다. 「달러와의 전쟁」이 시작된지는 오래됐지만 최근의 「달러기근」현상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남아있는 달러화와 오늘 하루 은행에서 결제될 수출대금이 얼마인지를 검토한다. 물론 거의 없다. 달러가뭄이 심화되면서 보유외화는 거의 바닥이 났고 은행들마저 수출대금 결제를 미뤄 달러를 구할 수 있는 길이 거의 막혔기 때문. 오늘 하루 이 회사가 필요한 달러화는 2천∼3천만달러. 은행문을 열자마자 주거래은행 외환담당창구를 찾는다. 이사람 저사람을 만나 네고해 놓은 환어음을 결제해 줄 것을 통사정하지만 바늘하나 들어갈 구멍이 없다. 이 은행 저 은행 할 것 없이 조금이라도 안면이 있는 사람을 찾아 다녔지만 결국 두손을 들고 만다. 시간은 점심시간이 훨씬 지난 하오 1시20분. 인근 패스트푸드 체인점에서 햄버거와 쥬스 한잔으로 허기를 때우면서 팀장에게 보고한다. 버럭 화를 내는 팀장의 목소리가 야속하기도 했지만 그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팀원 전체가 달러구하기에 매달렸지만 헛수고였던 것이다. 결국 마지막으로 기댈 곳은 한국은행에 근무하는 대학선배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이동중에 전화를 건다. 회사의 심각성을 토로하며 애원을 한다. 씨도 안먹힌다. 한은에 도착하자 마자 선배를 찾았지만 만나기를 거부한다. 통사정끝에 5분여 대면할 수 있었지만 『실수요 증명서를 만들어 거래은행을 찾으라』는 말밖에 들을 수 없었다. 발로 뛰어다녀도 시간이 부족한 마당에 실수요 증명서를 만들어야 하는 이중고를 겪어야 하는 것이다. 이는 한국은행이 시장내 거래기능이 끊기자 실수요 증빙이 이뤄진 경우에 한해 달러를 공급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시간은 은행마감시간이 거의 가까워진 4시를 가르키고 있다. 다시한번 담당자를 만나 통사정한다. 실수요증명서들을 제시했지만 모두를 결제해 주는데 난색을 표명한다. 이런 저런 사정을 들어 결제를 받은 금액은 1백만달러. 총수요의 30분의 1에 불과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은행에서 만난 다른 종합상사의 관계자도 사정은 비슷했다. 『90만달러밖에 확보하지 못했다』는 그의 말을 들으며 서로의 심정을 위로한다. 『달러를 구하기가 최근처럼 어렵기는 입사이후 처음입니다. 그렇다고 특별한 대책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불확실한 환율때문이 엄청난 스트레스와 긴장으로 숨이 막힐 때가 한두번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앉아서 당할 수는 없는 실정. K과장은 회사로 돌아온 5시30분부터 내일 처리할 수입승인서와 수출결제서류 등을 꼼꼼히 체크한다. 내일 모두가 결제된다고 전혀 기대는 할 수 없지만 조금이라도 많은 달러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촌음을 아껴야 하기 때문. 『매일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입니다. 자나깨나 달러밖에 안보이는 최근의 현상이 언제나 잠잠해 질까요』라고 반문하는 K과장의 하소연이 입시한파보다 매서운 달러한파시대를 살아가는 금융팀의 하루하루가 요즘 우리나라의 경제위기를 대변하고 있다.<고진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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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진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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