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독재 시절 한 권의 책이 대학생과 시민에게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줬다. 리영희 선생의 문제작 '전환시대의 논리'는 사회과학서적으로는 처음으로 베스트셀러가 됐고 운동권을 포함해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끼쳤다. 프랑스의 '르몽드'는 그를 가리켜 '사상의 은사(恩師)'라고 극찬했을 정도다. 세월이 흘러 리영희 선생이 지난해 12월 팔순을 맞았다. 그에게 적잖은 영향을 받은 후배들이 모여 이를 기념하기 위한 헌정 비평서를 출간했다. 한국 현대사의 비판적 지성의 상징이자 민주주의를 향한 중심축으로 오래도록 존경 받아온 그이기에 눈길을 끄는 저작이 아닐 수 없다. 책 제목이 시사하듯 리영희 선생의 사상을 통해 오늘날 한국 사회를 들여다보는 탐험은 다양한 분야에서 이뤄졌다. 이번 작업에 참여한 필진도 서문을 쓴 홍세화를 필두로 리영희를 사상의 스승으로 모시는 70~80년대 학번부터 20대 신세대 논객까지 세대를 뛰어 넘는다.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학과 교수는 리영희의 눈으로 전쟁을 들여다본다. 전쟁은 물질적인 것만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관계들도 파괴하고 새로운 관계들을 만들어낸다는 것이 리 선생의 오랜 신념이다. 한마디로 전쟁은 모든 것을 뒤집어버리는 일종의 '혁명'이라는 주장이다. 그의 제자임을 자처하는 김 교수는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 냉전 체제의 속성을 파헤친다. 종교에 대한 비판적 입장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선생은 일관되게 종교와 대립각을 세워왔다. 제도와 교리에 갇힌 기성 종교를 비판하고 진정한 종교 정신을 촉구했던 것이다. 공동 저자로 참여한 이찬수 종교문화원 원장은 기성종교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동시에 보편적인 종교 정신을 강조한다. 언론과 기자에 대한 단상, 영어 교육에 대한 현실진단, '88만원 세대'로 불리는 청년 문화 등에 대한 사회과학적 접근도 진솔하게 풀어냈다. 1만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