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들도 부러워하던 국내 IT(정보기술) 산업이 더 이상 제2의 도약을 하지 못하고 몇 년째 주춤거리고 있다. 이런 상태가 오래가면 자칫 성장엔진에 불을 지펴야 할 불씨 자체가 꺼져 버리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IT산업에 성장동력을 불어넣어야 하는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국내 통신시장을 주도해온 유ㆍ무선 통신사업자들에게 있다고 본다. 이들이 우리나라를 IT강국으로 이끈 장본인이자 최대수혜자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현재 거대기업으로 성장할수 있었던 것도 많은 국민들이 기꺼이 비용(요금)을 지불해가며 통신서비스를 이용한 덕분이다.
이 같은 막중한 책임을 걸머진 통신사업자들이 투자에는 상당히 인색해서 IT경기 회복을 지연시키고 있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 기업의 투자는 타이밍이 가장 중요하다. 미래의 불확실성이 완전히 제거되고 경기가 회복될 때까지 기다리면 경쟁력 상실은 물론이고 경기회복시 거머쥘수 있는 호기를 놓칠수도 있다. 기술선점의 효과가 큰 IT산업의 경우 더욱 그렇다.
통신사업자들의 투자규모는 IT경기 활성화와 직결된다. 통신사업자들의 투자가 늘어나면 그만큼 시장이 탄력을 받아 성장하는 반면 줄어들면 시장은 위축된다.
국내 5대 통신기업의 투자추이를 뜯어보면 실상이 그대로 드러난다. 투자는 2000년을 정점으로 3년 연속 줄어들었으며 내년에도 올해보다 축소될 전망이다. 일부 기업은 당초 계획했던 투자액마저 모두 사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문제의 심각성을 말해주고 있다.
특히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각광받고 있는 4대 신규사업이 암초에 부딪혀 표류할 조짐을 보이고 있어 안타깝다. 사업자 선정당시부터 숱한 화제를 뿌렸던 IMT-2000사업은 사업자들이 시장성 저하를 빌미로 상용서비스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어 용두사미가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또 위성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 휴대인터넷, 홈네트워크 등 신규사업도 이런저런 이유로 해서 차질을 빚고 있다.
경기불황속에서도 통신사업자들은 올해에도 무려 4조원에 가까운 흑자를 올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투자 확대의 당위성은 더욱 크다. 물론 벌어들인 돈을 모두 써버릴수는 없지만 통신업은 아직은 성숙단계에 접어들지 못하고 발전단계에 속해 있으므로 투자가 필요한 업종이다. 사업에서 얻은 이익을 축적하기 보다는 투자를 늘려서 전체 파이를 키우는 일이 더 시급하다.
통신사업자들의 심정도 일견 이해가 간다. 시장성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무작정 투자를 늘릴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었다가 사용자가 예상만큼 늘어나지 않으면 그 피해는 몽땅 사업자들이 져야 하기 때문이다.
사업발주자인 통신업체들이 주요 사업들을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쪽은 바로 장비업체들. 정부의 말만 믿고 엄청난 자금을 기술개발에 투자했다가 시장상황이 꼬이는 바람에 한푼도 건지지 못한 채 공장문을 닫기 일보직전이라고 한다.
통신장비를 개발해온 한 중소기업 사장은 “막대한 돈을 들여 개발한 장비들을 하루빨리 통신업체에 납품해야 하는데 사업자체가 불투명해서 고철덩이가 될 지경”이라고 하소연했다.
우리나라가 IT 강국으로 부상할수 있었던 것은 초고속통신망인 ADSL의 보급덕분. 당시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로 ADSL망을 보급한 저력을 바탕으로 우리나라는 세계 최강의 인터넷강국으로 자리매김했다. 당시 우리가 조금만 때를 늦추거나 망설였다면 현재와 같은 통신강국의 명성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국내에 초고속통신망이 처음 등장했던 98년 하나로통신은 당시의 대세였던 종합정보통신망(ISDN) 대신 주변의 우려를 무릅쓰고 과감히 ADSL을 선택해서 대성공을 거두게 됐다. 하나로통신이 ADSL사업에만 무려 1조8,000억원을 투자한 덕분에 세계 최초로 ADSL을 상용화시켜 정보통신 강국의 기틀을 닦게 된 것이다. IT산업에서는 이처럼 어느 정도 모험을 수반한 과감한 투자만이 경쟁력을 갖게 되는 비결이다.
향후 우리나라를 10년 이상 먹여 살릴 분야가 IT산업이라는 사실은 두말할 나위 없다.
IT는 우리경제의 성장엔진이나 젖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장엔진을 꺼뜨리지 않고 유지하려면 리딩컴퍼니들의 과감한 투자가 선행돼야 한다. 단지 1년 앞만 내다보는 근시안적 경영에서 벗어나 10년 이상 시장을 주도할 분야에 과감한 투자가 필요한 때다.
<연성주(정보과학부장) sjyon@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