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회생 노사안정에 달렸다(사설)

나라 경제를 되살리자는 것이 새해 국정운영의 지상과제가 되었다. 이를 달성하는 최대의 관건은 뭐니뭐니해도 노사관계의 안정이다. 경제되살리기의 요체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노사가 힘을 합쳐 하기로 맘만 먹으면 안될 일이 없다. 우리나라 경제개발의 역사가 그것의 산 증거이다.그런데 연초부터 노사관계가 불안정하다. 작년말 국회를 통과한 새 노동관계법이 남긴 후유증이다. 노측의 불만을 이해하면서도 꼭 총파업과 같은 극한적인 방법만을 써야 하는지 이해가 안된다. 민주노총이 3일부터 총파업에 들어간데 이어 한국노총이 오는 11일부터 총파업에 돌입할 예정인데 산업현장이 파업사태에 휘말릴 경우 경제회생은 커녕 붕괴를 재촉할 뿐이다. 정리해고제 변형근로제 퇴직금 중간정산제등 새노동관계법이 담고 있는 내용은 구법에 비해 근로자에게 상당히 불리하다. 그러나 경영자의 입장에서 보면 구법은 너무 근로자 권익위주로 돼있어 근로자들의 요구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었다. ○심각한 노동법 후유증 산업현장에 자유화의 물결이 밀어닥친 지난 7∼8년간 우리나라 노사관계는 협력적이기 보다는 대립적인 양상을 연출했다. 선진국의 노사협상 태도를 보면 서로의 주장을 관철하기위해 최선을 다해 상대방을 설득시키려고 노력한다. 뿐만 아니라 이를 바라보고 있는 국민들에게도 활발한 홍보활동을 전개해 자기주장에 대한 지지를 얻어내려고 애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노사 모두 국민을 상대로 자기의 주장이 합리적임을 알려 협상에서의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려고 한다. 이에비해 우리의 노사협상은 싸움판 모습이 일상적이다. 대화를 통한 타협의 자세는 순간적이고 요구조건이 관철되지 않으면 곧장 파업이라는 집단행동에 나선다. 파업때 등장하는 구호들도 듣는 이의 마음을 섬뜩하게 하는 것들이 많아 이것이 노동운동인지 이념투쟁인지 어리둥절하게 한다.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기업의 성장이나 존망, 경쟁력등을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것으로 보일 뿐이다. 우리 경제가 위기상황으로 치닫는 근본 원인 중 하나가 기업의 경쟁력약화라고 한다면 이 시점에서 우리는 보다 냉철해져야 한다. 침몰 위기에 빠진 미국의 자동차회사 크라이슬러를 살린 리 아이아코카회장을 우리 모두 유능한 경영자로 평가하고 있다. 그가 사장으로 재임한 3년동안 35명의 부사장중 33명을 해고했고, 이익을 못내는 공장을 폐쇄하는 과정에서 2만5천명의 종업원을 해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높이 평가하는 것은 조직이 위기에 처했을 때 과감한 결단으로 조직을 구했기 때문이다. ○노사 모두 냉철해야 자신이 관여되지 않은 객관적 상황을 평가할 때는 냉정을 유지하면서도 자신의 이해가 걸린 일에는 엄청난 이기주의에 빠지는 것이 인간의 속성이다. 그래서 기업이라는 조직을 희생시켜가며 모든 사람을 포용한다는 것은 올바른 의사결정이 못되는 경우가 많다. ○「의」 선택 제한적으로 이는 노먼 메일러의 소설 「나자와 사자」에도 잘 나타나 있다. 크로프트 상사가 이끄는 특공대는 작전중 분대원 한 사람이 부상을 당했다. 이 동료를 데리고 가자니 분대에 부담이 되고 버리자니 동료를 죽이는 결과가 돼 분대원은 고민에 빠진다. 특공대는 동료애를 택해 이를 데리고 가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분대 전체가 위태로운 상태에 이르자 크로프트 상사는 그 동료를 절벽에서 자살하게 함으로써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한다. 이같은 예는 동양사상에서 말하는 인의의 정신과 일맥상통한다. 인은 생명을 존중하는 개념으로 기업에 비기면 기업의 존망과 관계없이 조직원을 포용한 채로 가는 상태다. 이에반해 의는 생명을 칼로 베는 개념으로 기업경영에서 불필요한 인원을 해고시키는 것에 비유된다. 전통적으로 동양의 경영철학은 인을 강조하는 방향을 택했지만 서양의 경영철학은 의를 더 강조한다. 즉 인은 생명에의 절대적 가치를 부여하는 쪽이고 의는 희생시켜야 할 생명은 희생시켜야 한다는 쪽이다. 노사관계에서 노측의 사고가 인이라면 경영측의 사고가 의에 가깝다. 개정노동법은 인의 측면이 다소 후퇴하고 의의 측면이 부각되었다. 이는 조직 전체를 살리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그래서 법에도 경영측이 의를 선택할 때 조직의 존망과 직결되는 상황에서만 제한적이고 선별적으로 시행하도록 제한규정을 두고 있다. 모름지기 모든 법은 제정만이 아니라 시행이 효율적이어야 제정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시행이 효율적이지 못하면 법은 언제든 고쳐져야 한다. 아직 시행되지도 않은 법을 놓고 노측이 총파업으로 대응하는 것은 어려운 경제를 더욱 곤경에 빠뜨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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